“00야, 숙제(공부)하고 놀아라~”
부모로서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다 보면 우선 해야 할 것을 해놓고
여가시간에 노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부모 자신도 모르게 자녀가 노는 시간을 가만 보기 어렵고,
그래도 여유 있는 초등학교 때 남들보다 영어와 수학을 미리 많이 배워두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내일 무엇이 될지 걱정하지만 그가 오늘 누구인지는 잊는다”
-스테이시 타우셔-
자녀가 태어났을 때 너무나 뿌듯해서,
아이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도 온갖 응시와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이러한 응시와 지지로 인해 우리 자녀는 지금처럼 어엿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자라서 사람역할 하는 것 같고, 뭔가 가능성도 꿈틀거린다고 될 때
'00의 부모의 자녀, 000이가 무슨 상을 탔다더라, 벌써 고등학교 어디를 끝냈더라'는
이야기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자녀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녀에 맞는 방식이 아닌,
부모가 생각한 부모가 배운 방식대로
자녀에게 요구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기 쉽습니다.
‘이왕이면, 내 자녀가 일류대 갔으면 좋겠고,
내가 못다 이룬 꿈을 꼭 실현했으면’ 하는 마음이 꿈틀, 꿈틀댑니다.
특히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주요 가치관이나 주제를 잘 보여주는 관계가
첫째 자녀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첫째 아이는 자녀라기보다는 확장된 나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좌절한 데서 좌절하면 안 되고,
내가 결핍됐던 것을 이 아이에게는 꼭 채워주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 원했고,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내가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을 자녀에게 줍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지만
자기 감정과 생각에 빠져 주는 일방적인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의 마음을 볼 수 없다면,
"오늘의 자녀"를 기쁨과 순수한 눈으로 볼 수 없다면,
부모자녀의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되기 쉽습니다.
자녀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생각될 때
예전에 비해 갑자기 자녀와 관계가 어려울 때,
나의 과거나 내가 생각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내 방식대로 자녀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편안한 시간에 한번 돌아 보세요.
영유아기 때, 자녀의 자라나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아이가 한 발짝만 내딛어도, 환호하고 기뻐했던
그 시절의 환호와 기쁨이 사라져 버린 이유를...
나의 결핍된 어린 시절이나, 미래의 경쟁사회가 주는
두려움과 불안속에
자녀자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나의 욕심이나 나의 해결되지 못한 욕망’의 대리자로 보는 것은 아닌지...
오늘, 그 옛날 눈앞에 있는 아이를 신기해하며 아이를 바라보던 그 눈빛처럼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누구인지, 뭘 원하고 있는지 “아이, 000 자체”를 바라봐주세요~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