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냥이 집사 구하기 Project 11.
아무래도 조금 급하게 일이 진행된 느낌이 없지 않다. 까미를 돌봐주시던 임시 보호자님께서 지역 맘카페에 까미에 대한 글을 올리자마자 까미를 입양하고 싶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고 한다. 그분들에게 입양 계약서를 받아 내게 전해준 것이 총 6장 정도였다. 그중에서 나의 추가 질문에 답장을 해준 사람이 4명이었고, 또 그중에서 까미를 데려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2명이었다. 입양 신청자 중 한 명은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고 성인 2명과 아이 한 명이 사는 집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재택 근무자라고 했고 집에 다른 고양이는 없이 처음 키워 본다고 했다. 까미에게는 어떤 집이 나을지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키워고 있다는 분의 집이 내 집과 아주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미를 데려가기 전에 좋은 사람일지 직접 보고 결정하고 싶어서 당장에 문자로 내일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어머, 그럼 잠깐 뵙고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당장 내일이어도 됩니다.
-그러면 내일 근처 카페에서 만나요.
그렇게 카페에서 만난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은 서로를 친남매라고 소개했다. 고양이를 키운 경험도 있고 지금은 캣타워가 없지만 곧 구매할 거라고 하시고, 가정방문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여러모로 안심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많은 분들이 가정방문 때문에 입양을 거절하시기 때문이다. 까미를 데려간 후에도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까미를 입양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임시 보호자님께 전화해 까미를 입양 보낼 집을 찾았다고 내일 까미를 데리러 가겠다고 전했다. 다시 설명하자면 입양신청서를 받은 다음날 입양신청자를 만나 보고 그다음 날 까미를 데려다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성급하게 진행한 건 아닐까 찜찜해진다. 꼬미를 데려간 분은 3일 정도는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 까미를 임시 보호해주던 사람에게도 새롭게 가족으로 맞을 사람에게도 너무 급한 전개였을 것 같다.
임시보호를 해주던 분은 대학생이라 그분의 수업이 끝나기까지 기다려서 만났다. 40분이나 일찍 임시보호자의 동네에 도착했지만 그동안 까미를 돌봐주었으니 마지막으로 인사할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난 직후 책가방을 매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임시 보호자의 모습에 제법 앳된 티가 났다. 함께 집에 들어가 임시 보호자님이 "까미야!"라고 부르니 그새 제법 자란 까미가 총총총 달려 나왔다.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 것 같아 기특한 데다 일주일새 몸집이 많이 커진 것을 보고 놀랐다. 항문에 작은 염증이 생긴 것 외에는 달리 아픈 곳 없이 건강해 보였다. 새끼 고양이들은 혼자 그루밍을 잘하지 못해서 항문이 깨끗하지 못한 때가 있다. 처음에 데려왔던 상자에 담아보니 그새 쑥쑥 자랐다는 게 느껴졌다. 애틋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전하며 까미와 집을 나왔다. 짧은 사이 까미를 위한 장난감과 사료가 큰 쇼핑백에 가득했다. 그동안 까미는 그 집에서 듬뿍 사랑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이 어린 고양이도 헤어짐이라는 것을 아는지, 임시 보호자님의 집을 나오면서부터 까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고 상자 밖을 나오려고 했다. 처음 그 집으로 갈 때는 얌전히 잠들어 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고 그사이 성대도 자랐는지 제법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버둥버둥 도망치려고만 했다. 어느날 갑자기 자기의 형제가 작은 상자에 담겨 떠나고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작은 상자에 담겨 첫번째 임시보호자의 집을 떠나온 것으로 학습한 모양이다. 자신이 또 작은 상자에 담기면, 정든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진주에서 창원으로 오는 1시간 동안 까미는 쉬지 않고 울고 상자 밖을 나오려 버둥거렸다. 직접 돌보진 않았지만 나도 나름 까미를 위해 애썼는데, 나의 수고는 영 몰라주고 계속 발버둥을 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고양이 까미가 내 수고를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아는데 괜스레 그런 옹졸한 마음이 생긴다.
집에서 가져온 캐리어에 까미를 옮기고 동물병원부터 가서 항문에 생긴 염증 치료를 받았다. 주사를 맞고 깜짝 놀랐는지 까미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울어대고 아픈 주사를 맞게 한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 동물병원은 꼬미와 까미를 처음 발견하고 검진을 받았던 병원이라 간 김에 꼬미의 상안검 수술도 상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꼬미와 까미의 입양을 알아봤다는 사연을 들려드리니 수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일 하셨다고 칭찬해 주시면서 간혹 고양이를 데려가고도 파양 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꼭 저런 대사가 복선이던데......'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까미의 새 집에 방문해보니 5살 난 남자아이가 있었고 일전에 만난 남매 중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에는 금동이라는 치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고 낯선 사람과 고양이의 등장에 커튼 사이로 숨은 상태었다. 까미는 처음에 주춤하면서 구석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이내 집안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넉살이 좋은 건지 깡이 좋은 건지 자기보다 형인 금동이의 밥그릇에 있는 사료를 훔쳐 먹고 금새 장난감을 보면서 놀기 시작했다. 입양 계약서를 주말에 쓰기로 하고 집을 나오면서 여러 번 까미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아침부터 함께 진주까지 가서 까미를 데리고 온 엄마는 아까부터 배가 고프시다고 채근하고 있었다. 곧장 자주 가던 낙지볶음 가게에서 통통한 낙지볶음을 주문해 나눠 먹으면서 나는 계속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둥, '까미가 새 집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라는 둥' 입이 댓발나와 투덜거렸다. 내 투정을 가만히 듣던 엄마는 '우리 딸,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것 같다'라고 일침을 가하셨다. 까미는 이미 새 집에 갔고 이제부터는 새 집사가 까미를 돌볼 것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아 속이 쓰렸다. 공동양육이니 책임감이니 하면서 사실 꼬미와 까미를 떠나보낸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작은 고양이들을 생각하고 좋은 집에 보내고 싶어 고군분투하던 날이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나 기쁨을 준 것은 사실이다. 종종 소식을 듣는 까미와 꼬미의 사진에 가슴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이 서운하고 아쉬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 떠나보내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좋다는 걸 이해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보다 한 뼘은 작은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오지랖 넓은 딸내미 때문에 고생했어, 엄마!"
꼬미를 무주 IC까지 데려다준 것도 진주와 창원을 오고 가며 까미를 데려다준 것도 엄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오지랖에 길에서 다친 고양이를 막내딸처럼 키우고 있으니 생명을 아끼겠다는 내 알량한 구호는 다 엄마의 지원을 받고서나 의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마땅히 작고 어린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엄마의 태도에서 배운 걸지도 모르겠다. 늘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멋모르고 학교 앞에서 사 온 500원짜리 병아리나 메추리를 보살피는 방법을 알려줬다. 난 왠지 모르게 보살핌에 소질이 없어 병아리를 잘 돌보지 못했고 지금 키우는 고양이에게도 살뜰하지 못하다. 그저 밥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매일 같이 잠드는 것이 내 사랑의 방식인 것이다. 엄마는 아끼고 보살피는 방식으로 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무뚝뚝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며칠 후 까미의 입양 계약서를 쓰고 나오면서 헛헛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계약서 쓰면 돌이킬 수 없지?"
"응, 돌이킬 수 없어."
이제 까미는 내 손을 떠나 새 집에서 새 이름을 받아 살아갈 것이다. 보내주고 놓아줘야 할 것은 내 미련뿐이었다. 동생은 아쉬워하는 나에게 '누나가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할 일을 다 했다는 그 말이 가장 슬펐다.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삶은 그렇지 못한 삶보다 가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상자 속에 버려진 고양이들에게 새 안식처를 찾아주는 일이 내 영혼에 불을 붙여주고 잠시나마 삶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차갑게 식어 버리고 또 의미 없이 방황하는 시간을 잠시 보내야만 했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덩달아 내 마음도 쓸쓸해져 한동안은 늘 울적하기만 했다. 사진으로 확인한 까미와 꼬미는 '쭈니'와 '구름이'라는 새 이름으로 사랑받고 잘 지내고 있었다. 뭔가를 사랑하는 일은 늘 쓸쓸함을 남긴다. 이제는 정말 마음속에서 까미와 꼬미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