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넘어도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지.
친한 친구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퇴사를 결정했어요. 30대에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와 제가 전화로 나눈 대화를 정리해봤어요.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고민일 수 있겠죠? 그렇다면 저의 친구 입장에 되어 저와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친구 : 나 오늘 퇴사한다고 말했어
구름 조각 : 그동안 고생했어. 퇴사하는 날짜까지 정한 거야?
친구: 응. 2월 말까지만 일하기로 했어. 나 3월에는 백수야.
구름 조각 : 그럼 이제부터 내가 너 먹여 살릴게.
친구 : 나까지 먹여 살리기엔 네 월급이 너무 적지 않니?
구름 조각 : 와 팩트 폭행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럼 그냥 마음만 받아라…
친구 : 아니야. 농담이야. 앞으로도 계속 나랑 놀아줘. 친구야…
구름 조각 : 앞으로는 뭐 할지 생각해 봤어?
친구 : 그런 거 없지만 일단 퇴사하기로 했어. 도저히 더 버틸 자신이 없어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지…
구름 조각 : 30대의 진로 고민이야?
친구 : 30살 넘어도 나만 이렇게 진로 고민하는 거 아니잖아?
구름 조각 : 당연하지. 너처럼 30대에도 진로 고민하는 사람 많아. 40대, 50대에도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더라… 브런치 글만 봐도 30살 넘어서 퇴사하고 뭐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많은데 뭘… 그리고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잖냐.
친구 : 너도 지금 브런치에서 글 쓰고 바리스타 일도 하지만 아직 진로 고민이 끝난 건 아니지? ‘이게 내 길이다!’이런 확신은 없는 거지?
구름 조각 : 음… 나는 그냥 유연하게 살기로 했어.
친구 : 진로를 결정한다거나 그런 거 없이?
구름 조각 : 응. 일단 지금은 내가 즐겁게 생각하는 일을 하기로 했어. 내 가슴이 뛰는 일, 내가 즐거워하는 일 말이야.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떠해야 한다라는 틀은 정하지 않기로 했어.
친구 : 아…
구름 조각 : 직업(職業)이라는 글자가 있잖아? 근데 직과 업은 다른 뜻이거든… 직은 남이 나에게 부여한 일이고 업은 스스로 재능을 발휘하고 인생에서 이뤄야 할 프로젝트 같은 거야. 예를 들면 내가 스타벅스라는 조직 안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건 직이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거나 음(Mm)에서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는 것은 업인 거지.
친구 : 그걸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야?
구름 조각 : 응. 나는 일단 글을 쓰고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게 너무 즐겁거든. 근데 이게 생계를 해결할 만큼 안정적인 일은 아니잖아. 그럼 내가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의 일원으로 하는 일은 따로 가져가면서도 내가 즐거운 일을 계속하기 위한 선택이었지. 그리고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도 그렇게 적성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친구 : 응. 너는 잘 적응하는 것 같더라.
구름 조각 : 안정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때의 이점도 있으니까 내가 자유롭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크리에이터 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 같은 거라고 생각해.
친구 : 너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
구름 조각 : 그건 나도 잘 몰라. 너도 알다시피 내가 20대까지는 엄청 방황하고 진로 고민 많이 했잖아. 나의 일이 즐겁고 내 재능을 살리면서 돈도 많이 벌고 남들의 인정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직과 업을 분리해서 생각하면서부터 선택지가 참 많아지더라고. 그리고 직으로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업을 하면서 풀기도 하고, 업에서 얻은 고민을 직에서 도움받기도 하니까. 서로 시너지가 되는 거지.
친구 : 와...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구름 조각 :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문득 '아... 내가 원했던 게 삶이 이런 삶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라도 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일을 해왔거든. 단지 그 도구가 붓이 되기도 하고 펜이 되기도 했을 뿐이지. 근데 의식적으로는 내가 그런 삶을 원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해서 늘 마음 한편이 불만족스러웠거든. 그런데 30살이 넘어서야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를 표현하면서 이 일이 정말 만족스럽다는 걸 깨달은 거야.
친구 : 잘됐다...
구름 조각 : 응. 손에 붓을 들던 펜을 들던 상관없이 앞으로도 계속 나를 표현하는 삶을 살 거야.
친구 : 나는 아직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구름 조각 : 나도 많은 시간과 방황을 한 끝에 알게 된 거야. 근데 '만족스러운 일'을 찾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이제 소재가 떨어지지 않냐고 물어보거든? 근데 소재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 계속 쓰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고 늘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그리고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게 정말 즐거워. 나는 이게 진심으로 즐거운 일이라 계속할 수 있었어. 물론 나도 누군가 내 글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돈으로 평가했다면 이만큼 즐겁지는 않았겠지? 의기소침해져서 금방 포기해버렸을지도 몰라.
친구 : 맞아. 맞아. 그런 지적질 때문에 나도 퇴사하는 거야.
구름 조각 : 너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환경에서는 버틸 수 없었을걸? 근데 뭐, 브런치에선 내가 원해서 글을 쓰는 거고 누가 날 지적하지도 않아.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내가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있어.
친구 : 나도 그런 걸 찾으면 좋겠다...
구름 조각 : 찾을 수 있어. 우리 아직 젊어.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야.
친구 : 이제 머리 굳어서 공부해도 머리에 안 들어올걸?
구름 조각 : 내가 일했던 도서관 사서님은 40살에 공무원 시험 준비했대. 일반 회사 다녔는데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가 힘들어서 회사 그만두고 다시 문헌정보학과 강의 듣고 사서 시험 준비한 게 40살 되던 해였대.
친구 : 그분도 대단하다.
구름 조각 :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는 거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네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하다 못해 괴롭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어.
친구 : 맞아. 나 진짜 너무 힘들었어.
구름 조각 : 알아. 그래도 우울증 걸리기 전에 그만둔 게 좋지. 마음에 병 걸려서 퇴사하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 퇴사하길 잘했어. 이제부터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것들도 배우면서 네가 원하는 일을 찾아보자.
친구 : 응. 나도 그럴 생각이야.
구름 조각 : 그래. 그동안 고생했어 친구야. 다음에 만나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30대가 되어도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아요. 저뿐만 아니라 제 또래의 친구들을 포함해 브런치의 독자, 작가분들 모두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많은 방황을 했고 여전히 제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은 제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제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고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새롭게 길이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삶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