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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04. 2022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3)

피임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생 처음으로 야한 영화를 본건 11살이던 때였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날은 목요일 저녁 9시였고 아빠는 피곤하다고 일찍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도 회식이라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늦은 시간까지 TV를 볼 수 있었다.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다가 OCN을 틀었는데 마침 화면 아래쪽에 다음 영화 예고가 흐르고 있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빨간색 19금 마크를 봤다. 아빠는 자고, 엄마는 늦게 오시니 생애 처음으로 야한 영화를 보기에 완벽한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1시까지 기다려서 본 영화의 내용은 이랬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배경인데 중년의 남자 주인공은 어느날 아들이 마당의 풀장에서 여자친구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다. 괜히 마음이 동하여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지만 (어쩐지 그의 아내는 알몸에 안대만 쓰고 자고 있었다) 피곤한 아내는 그의 욕망에 반응해주질 않는다. 그 다음날 남자 주인공은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려 탈의실 문을 열었는데 마침 젊은 여자가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다.


    불과 11살이었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여자와 남자가 눈이 마주친 순간 직감했다. ‘저 두사람이 하겠구나!' 뭘 할지는 몰라도 옷을 갈아입던 젊은 여성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란 건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현관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TV를 끄고 현관으로 나가서 늦은 귀가를 한 엄마에게 "엄마, 왔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치가 빠른 엄마는 내 목소리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너 뭐 봤어?"라고 되물었다. "너 뭐 했어?"도 아니고 "너 뭐 봤어?"라니... 어쩐지 뜨끔하여 어버버 하는 사이 엄마는 거실을 둘러보고 TV 화면 옆에 놓인 케이블 TV연결장치에 초록불이 들어온 걸 발견했다. 급한 마음에 화면만 끄고 케이블 연결을 끄지 않은 것이다. 황급히 리모콘으로 손을 뻗어 봤지만 엄마가 한 발 빨랐고 그렇게 켜진 화면에서는 격정적인 베드신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순간의 민망함도 민망함이지만 억울함도 컸다. 저녁 9시 부터 기다려 생애 첫 야한 영화를 볼 생각에 들떴었는데 정작 중요한 장면은 하나도 못 본게 분했다. 보기라도 보고 혼이 나면 덜 억울할 텐데, 잠깐의 순간에 영화가 어떤 전개로 흘러갔기에 베드신이 나오는 건지... 잠깐의 정적 후 엄마는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 너 이런 것도 보니?"


    장난기가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에 제법 앙칼지게 "그래, 봤다! 왜!? 나도 이제 사춘기니까 이런 거 좀 볼 수 있지!" 쏘아 붙이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등 뒤에서 엄마가 "어쭈구리?"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창피하고 아쉬운 마음에 서둘러 잠에 들었다.


    다음날, 엄마는 나에게 책을 한 권 건네었는데 「여성의 성과 건강」이라는 어린이용 의학 백과사전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위한 엄마의 배려가 나의 성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 그 책을 2번쯤 정독해서 읽었다. 여성의 몸, 임신, 출산 ,피임, 성병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제법 아는 체 하며 피임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해주는 지루한 성교육보다 나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들어줬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각종 피임법'을 읊던 것과 달리 첫 섹스에서 난 너무 어리숙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 때 엄마는 "남자친구 자취방에는 가지 마라."는 말을 했다. 그 경고를 주의깊게 듣지 않아서 22살 나는 첫경험을 남자친구의 좁은 자취방에서 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동의도, 콘돔도 없이 강압적으로 이뤄진 섹스였다. 내 팔을 움켜진 그를 밀어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후 남자친구는 집 앞에서, 강의실 앞에서 날 기다리며 한번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사정했고 다시 그의 자취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사과했고 나는 엉엉 울면서 그를 용서해줬다. 그리고 그날 두번째 섹스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후로 자꾸 몸이 아팠다는 것이다. 방광염인줄 알아서 비뇨기과에서 약을 한달째 먹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병은 낫질 않고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자 비뇨기과 의사는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다. 어려서 부터 생리통이 심했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처방해주는 진통제를 먹곤 했다. 그래서 용감하게 집 근처 산부인과를 검색해서 혼자 내원했다. 그때까진 별로 큰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불친절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경부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염증이 너무 심각하니 '자궁경부암'검사부터 해보고, 덧붙여 임신 테스트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덜컥 겁이 나서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오빠, 나 산부인과 왔는데 염증이 너무 심하다고 의사가 암검사랑 임신 테스트 하겠대"

카톡 메세지에서 1이 사라지고 그는 아무 답장이 없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중이었다. 여러번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지만 확인조차 하지 않는지 읽었다는 표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로 부터 10년이 지나 32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날의 나를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22살의 내가 혼자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던 것이 너무 가엾기 때문이다. 연락을 받지 않는 남자친구 외에 누구에게도 나의 상황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외로운 시간이 지나고 검사결과가 나왔다. 암도 임신도 아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성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염증이 심해져서 골반염으로 번져 걸을수도 없던 거라고 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서 남자친구에게 "임신이 아니래."라는 메세지를 보내자 마자 그가 답장을 했다. 이제껏 뭘 하느라 답장도 전화도 없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왜 답장 안했어? 나 혼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마음이 심란해서 핸드폰은 집에 두고 산책하러 갔다 왔어."


    그의 대답에 무너진 건 내 자존심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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