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Apr 05. 2022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4)

살기 위해서 남자와 이별해야 했다.

    남자친구가 성병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고 콘돔 없이 첫 관계를 했을 때 옮았던 거였다. 그는 증상이 없는 보균자였을 뿐인데 여자인 나에게 발병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첫섹스의 상처는 병으로까지 번져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다. 매일 산부인과에 들러 주사를 맞느라 양팔에 퍼렇게 멍이 드는데 남자친구는 일주일치 약을 먹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고 예전에 헌팅해서 원나잇한 여자에게서 옮은 것 같다고 했다.


    10대에는 막연히 사랑이 늘 아름답고 달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경험한 첫사랑, 첫섹스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혼자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던 시간동안 임신과 성병에 대한 리스크는 나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필요로 할 때 남자친구는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와 관계를 유지한 것은 내가 그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직 사랑하고 있었고 그가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고 생각했다.


    병이 치료되고 난 후부터는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늘 미적대면서 콘돔이 없다고 둘러대거나 돈이 없다는 말로 회피했다. 어느날은 자기도 약을 먹어서 깨끗하니까 콘돔없이 관계해도 되지 않냐고 물었다. '임신이 되면 어쩔거냐?'는 질문에는 '자기 친구들도 콘돔없이 관계하는데 한번도 임신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나는 갖은 방법으로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콘돔을 쓰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말(회유)도 해봤고, 콘돔을 안 쓰면 관계를 안하겠다고 말(협박)도 해봤고, 나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줬으니 안심할 수 있게 배려해 달라는 말(애원)도 해봤다. 그동안 읽었던 어떤 성교육 서적에도 '섹스할 때는 콘돔을 쓰라'는 말만 있었지, '콘돔을 안 쓸려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콘돔 협상에 지친 나는 피임약을 먹기 시작했다. 시중에 파는 피임약은 잘 맞지 않아서 부정출혈이 생겼고 한달 내내 얇은 생리대를 속옷에 붙이고 다녀야 했다. 피임약을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안 먹을 때는 내가 직접 콘돔을 사다 주었다. 하기 싫은 수학 숙제를 억지로 하는 꼬맹이처럼 남자친구는 꾸역꾸역 콘돔을 쓰곤 했다. 생리가 끝나면 ‘안전한 날’이냐고 기대하는 모습이 간식을 기대하며 주인을 쳐다보는 개처럼 느껴졌다.


    다른 연애중인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다들 남자친구가 알아서 콘돔을 준비해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안전한 날'에는 남자친구가 콘돔없이 섹스하길 원한다는 말을 흘렸다. 드물게는 남자친구가 알아서 콘돔을 사오고 하고나면 매번 물을 채워 콘돔에 구멍이 났는지까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들어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8살 많은 남자친구와 결혼 약속을 하고 양가의 부모님께 인사까지 한 터라 갑작스러운 임신이라 해도 두 사람이 금방 결혼할 줄 알았다. 아마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입에서 "아빠가 될 자신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큰 배신감이 들었을 것 같다. 아이를 지우고 온 친구의 얼굴은 출산을 한 산모의 얼굴처럼 창백하고 헬쓱했다. 몸의 고통뿐만 아니라 수치심과 배신감,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했다. 친구의 슬픔은 금세 나에게 전염되었다.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만약 내가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물었다. 그는 가벼운 목소리로 "책임져야지."라고 했지만 이내"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아..."라며 말을 흐렸다. 친구의 상황을 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배운 나로써는 그의 말에 아무런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오빠가 책임지겠다’던 약속은 너무나 가볍고 무의미했다. 아이가 한번 생기고, 10달의 시간이 지날 동안 그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임신은 여자의 몸에만 흔적을 남기고 여자의 마음에 더 큰 고통을 남겼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남자친구는 순전히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내 뱃속 자궁에 대고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었다. 만약 총알이 발사되면 피를 흘리게 될 사람은 나였다. 관계가 끝나고 다음 생리가 오기까지 불안한 건 나뿐이었고 이번에도 임신하지 않았다며 안심하는 그가 역겨웠다. 그 분노와 혐오와 증오, 수치심과 배신감이 뒤섞여서 내 마음을 병들게 했다. 첫 연애가 끝난 후 4년 동안 어떤 남자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은 그들이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동안 아침 일찍부터 영어 공부를 하고 21학점을 듣고 독일어를 공부하고 밤늦게 도서관에 가서 과제를 했다. 8학기동안 7번 장학금을 받았고 틈틈히 공모전과 대회도 나갔다. 나는 동급생들에게는 질투와 견제를 받고 교수님들에게는 큰 기대를 받는, 야망이 큰 여학생이었다. 성공하고 싶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원했다. 그러니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적 소모와 임신이나 성병의 불안으로 내 미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사랑보다 내 꿈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졸업 후에는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간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한국 땅에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