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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Nov 03. 2022

겨울을 닮은 이야기(Narrative)

유라 <서울 사이보그>

    국가 애도기간. '애도(悼)'라는 단어는 '슬플 애(哀)'와 '슬퍼할 도(悼)'를 합친 단어다. 타인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는 동정심의 표현이다. 10월 30일 오전, 일하는 카페에서는 핼러윈과 관련된 모든 상품을 치웠다. 광고판이 붙어 있던 자리는 검은색 빈 보드만 남았다. 배경음악을 끄고 나니 카페 내부에는 적막이 흐른다. 음악소리는 보이지 않는 베일처럼 사람들 사이의 사적인 소리들을 가려주곤 했다. 음악 소리가 사라지니 옆 테이블의 소리와 의자를 끄는 작은 소음도 크게 울린다. 그 미묘한 불편함에 사람들은 일찍 자리를 떴다. 다시 적막(寂寞 ). 카페는 금세 고요하고 쓸쓸해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사고의 장면들이 반복된다. 눈으로 보는 참혹한 장면, 유가족들의 울음소리는 그들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들의 절망과 고통, 슬픔, 분노가 전해지며 생존을 위협받는 공포심을 일으킨다.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서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짓눌리는 고통을 두려워한다. 영상을 끄고 체온이 내려간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맨다. 불행이 나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은 것에 은밀한 안도감을 느낀다. 


    다시 뉴스. 책임자를 색출하라고 난리다. 누구 하나 화형대에 매달에 불태워야 끝날 모양이다. 정치인들은 기회를 포착한 하이에나처럼 서로의 적들을 물어뜯는다. 사랑하는 아들, 딸,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 손쉬운 명분이 된다.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숙연하게 자신의 책임을 곱씹는 이들은 없다. 공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된 건 오래전부터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인터넷상에는 이름을 숨긴 자들이 죽은 이들을 조롱하곤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놀러 갔다가 죽은 사람들이라 안타깝지 않다."거나 "그 자리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이라는 것이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통제 밖에 있는 불운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행위로 축소하려 한다. 그래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밤늦게 혼자 다니지 않았어야 한다'라고 말하거나, 공장 노동자가 사고를 당해 사망하면 '진작 공부해서 공장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어야 한다'라고 비아냥 거린다. 타인의 불행한 사건들이 언제라도 자신을 덮칠까 봐 두려워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낮에 무리지어 다니면서 겁탈당하지 않을 거라 믿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기계 장치에 팔이 끼이는 일을 피했다고 믿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지 않고 밤늦게 놀러 다니지 않는 것으로 불운한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배신당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선량한 사람도 끔찍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떠나간 이들은 안타까운 이야기를 남기고 갔다. 어떤 동갑내기 친구 둘은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배우의 꿈을 남겨두고 떠난 이도 있고, 부부가 함께 추억을 만들러 갔다가 모두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먼 타국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인 아버지나 장거리 연애 중에 남자 친구를 잃은 외국인 여자 친구도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체적, 심리적으로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지 못하여 마음에 짐을 얹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이야기도 잊히게 될까? 그 사람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슬픔이지 않을까?


    내년 이맘때에는 지난 10월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가늠해본다. 2023년 10월 30일. 뉴스에서는 참사 1주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안전 대책 따위를 논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은 정부의 무능과 비합리적은 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른 채널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방송이 편성되었을 것이고 유명인들은 자기들만의 파티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별 다른 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식사를 할 것이며, 소수의 몇 명들만 묻어놓은 슬픔과 고통에 괴로워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건들의 연속. 생각할수록 입안이 씁쓸해진다. 건조하고 찬 바람이 부는 와중에 나무들이 야위어 가고, 옷깃을 여미는 사이로 체온을 빼앗긴다. 이번 겨울은 때 이르게 찾아온 모양인가 하다가도 이내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것을 깨닫는다. 쌀쌀하고 쓸쓸하다. 쌀쌀한 것은 공기의 온도이고 쓸쓸한 것은 슬픔의 감촉인가. 언제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덮쳐 나의 세상이 무너질까, 위태롭게 휘청이다가 아직은 함께 슬픔을 견뎌야 할 때임을 안다. 후후- 길게 불어내는 입김은 따뜻하고 촉촉하여 쉽게 차갑고 건조한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떠난 이들의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것일 테지.


*내러티브(Narrative): 일련의 사건들이 가지는 서사성


https://youtu.be/VuUU6kWdR2w

<서울 사이보그>-유라 

서울 사이보그 아마도 내 음악은
물 없이 넘기는 쓴 약 Narrative
옷 위에 말라죽은 보풀 같은 나에게

배고픔은 주름이나 재주를 펼치게 해 주고
도로 옆 위태로움은 희망을 괴고 산다
엄마 난 아프지 않으니 걱정은 내려놓아요

나는 불행을 줍고 있을게요
사랑이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음 차지 않은 입김을 불어요 후후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처연하게 써왔던 이야기는
물 없이 넘기는 쓴 약 Narrative
옷 위에 말라죽은 보풀 같은 나에게

배고픔은 주름이나 재주를 펼치게 해 주고
도로 옆 위태로움은 희망을 괴고 산다
엄마 난 아프지 않으니 걱정은 내려놓아요

나는 불행을 줍고 있을게요
사랑이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음 차지 않은 입김을 불어요 후후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네 잎 클로버 소녀는 그게 보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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