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장들_6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

“고향, 그리움이 머무는 봄날의 끝에서 “


이별이 서러운 듯 4월이 장대 같은 비를 뿌리며

우리 곁을 떠나가자,

실록의 계절 5월이 황사를 앞세우고는 봄을

시샘하듯

질펀하게 한바탕 분탕질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다리를 놓으니 거지가 먼저 지나가는 꼴이 아닌가?


바야흐로 세상 만물이 약동하는 새봄이

돌아온 것이다.

날씨는 저녁 굶은 시어머니 화상처럼 우중충하게

흐려 있지만

머지않아 에메랄드빛 고운 하늘이 열리면

봄 또한 무르익겠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앙상한 나무들은

어느새 푸르른 새 옷으로 곱게 단장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춤추듯 하늘거린다.


겨울삼동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던 숲 속에서는

해맑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메아리치고,

동면에 빠져 있던 너른 들녘도 새소리에

잠이 깼는지

기지개를 켜며 농번기의 시작을 알린다.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 고향 봄날의 시골 들녘!

뒷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산자락 끝으로는 도토리 껍질을 엎어놓은 듯

아담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다정하게 모여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에는 실개천이 마을을 감싸듯

휘돌아 나가고,

개구쟁이 아이들은 산과 들로 쏘다니며

찔레순, 송깃대,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조잘거린다.


소 몰아 밭 가는 농부들의 구성진 풍년가는

들녘에 울려 퍼지고,

밀보리 익어가는 냄새에 흥이 난 봄바람은

송홧가루를 흩날린다.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방천둑에는

송아지 딸린 어미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생각만 해도 향수에 젖어,

마음은 벌써 고향 하늘로 달려간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찾아가 보면,

꿈속에서 그리던 옛 고향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볼품없이 늙어버린 촌노를 보는 듯, 쓸쓸하고 허전한 풍경만이 남아 있다.


밀보리 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은 모두 떠난 채 주인 잃은 빈집들만이

쓰러질 듯 겨우 버티고 서 있고,

빈터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긴 고향에는

소 몰아 밭 가는 농부의 모습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스컹크처럼 검은 매연을 내뿜는 트랙터가

논을 갈고 모를 심을 뿐이고,

환갑이 넘은 노인들이 청년인 양 힘겹게

농사짓는 모습에 가슴이 저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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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토록 생생한 풍경이 왜 이리 아플까?’ 생각했다.

봄의 아름다움이 짙어질수록, 사라진 고향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폭삭 늙은 촌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같은

표현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시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는지, 그 씁쓸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이 글을 지금 읽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고자 함이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이 풍경을, 이 마음을 다시 꺼내어

세상과 나누어야 한다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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