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_
”섣달그믐, 옛 설날의 풍경“
한 해의 출발은 여러 번 바뀌었다.
어떤 때는 동짓날을 설날이라고 한 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 섣달 초하룻날을 설날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섣달그믐이 오면
일 년의 마지막 날이기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시골에서는 많은 풍습들이 있었다.
섣달 그믐날이면
일 년 동안 보살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은인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올렸다.
우리 민족은 예의를 중시하는 민족이기에
묵은세배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섣달그믐이 되면 집안의 나쁜 잡귀들을 몰아내기 위해
온 식구들이 집안 대청소를 했는데,
그 또한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조상님들의 차례를 모시려는
효심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옛날에는 섣달 25일이면 부엌귀신들이
하느님께 일 년 동안 집안의 대소사를 고하고
집안의 복을 받아 섣달 그믐날 밤에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그믐밤이면 부엌귀신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들기름에 심지를 박아 집안 곳곳에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또한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쇤다고 하는 풍습도 있어서
아이들은 잠을 안 자고
묵은해가 가는 것을 지켜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다 혹시라도 잠자는 아이가 있으면
장난을 치느라 밀가루를 눈썹에 묻혀
눈썹이 하얗게 쇤 듯 만들어 놓기도 했다.
평안북도의 방언은 섣달을
‘서웃달'이라고 한다고 한다.
(서우)+(두)+(달) = 서우두달 서울달 섣달이
된 것이라는 말도 전해온다.
또 '설'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살'날이 왔다가 '설날'이 됐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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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새해를 맞는 일이 단순한 '날짜 변경'이 아니라
감사와 정갈한 마음으로 삶을 다시 여는
의식이었음을 알게 된다.
묵은세배, 부엌귀신을 위한 불,
그리고 하얀 눈썹을 장난치던 웃음까지—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는
기쁨과 공경, 그리고 소박한 따뜻함이 가득했다.
아버지의 기억 속 설날은
오늘 우리에게도 꼭 다시 꺼내보고 싶은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