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__
”가을 끝자락, 들녘의 기도“
가을도 어느새 끝자락으로
밀려나 세월의 끈을 겨울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
금년 여름에는 어찌나 비가 많이 내렸는지
전국이 수해로 갈가리 찢기고 할퀴어져서,
자식을 키우듯 애써 가꾼 오곡이 수해에 쓸려가자
농부들은 자다가도 빗소리만 들으면 깜짝 놀라
화들짝 잠이 깨어 애간장을 태웠다.
예부터 조상님들께서는
처서에 비가 내리면
독 안의 곡식이 줄어든다고 하셨기에,
농부들은 비가 그치기만을 학수고대했는데,
천행으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처서부터 비가 그치고 날씨가 좋아져서,
중환자처럼 시름시름 앓던 들녘의 오곡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머금고
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서서히 생기를 되찾더니
알차게 영글어 풍년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평년작은 이뤄서
농부들의 주름살은 활짝 펴주었다.
하느님 덕분에
서민들 또한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 삼동을
굶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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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글 속 들녘은,
단순히 곡식이 자라는 땅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결과 소망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수해에 무너질 뻔했던 삶이,
하늘과 햇빛을 따라 서서히 살아나는 이야기.
아버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기적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견디고 살아내는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