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_

”만추, 끝자락에서 부르는 노래“


가신 님의 눈물인양 밤새도록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더니,

날이 밝자 씻은 듯이 개여

만추의 가을은 구만리장천에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이 걸려있고,

나뭇가지에는 빗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찬란하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머금고는

영롱한 구슬처럼 반짝거린다.

거리에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곱게 물들어

가을바람에 춤추듯 나풀거리며 행복해 보이던

단풍잎들이,

지난밤의 비로 모두 떨어져서

보도 위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홍시가 땅바닥에 떨어져 터진 듯

끝자락에 선 가을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오면 가고 가면 다시 오는 것이 계절이건만,

왠지 이 가을은 가슴 가득 허전함과 공허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보도 위에 떨어져 나뒹구는

단풍잎 신세가 되겠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는

인간들도 지고 나면

단풍잎과 뭐 다를 것이 있겠는가.

"깍깍! 깍깍! 깍깍!"

집 앞 느티나무 꼭대기에서 까치가 울어댄다.

까치도 가는 가을이 아쉬워서 우는 것인가,

아니면 초여름 떠나보낸 자식이

그리워서 우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머지않아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삼동 살아나갈 일이 걱정스러워서 우는 것인가?

추수가 끝난 들녘은

시꺼먼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순산한 산모처럼 온몸이 축 쳐진 채

힘없이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가을 내내 두 팔 벌려 참새를 쫓던

허수아비만은 실직을 당한 실업자 신세가 되어

쓸쓸한 표정으로 홀로 들녘을 지키고 있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알찬 오곡을 생산하느라

산고를 치른 들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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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만추는,

단순히 가을 끝자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끝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고요한 시선이었다.

떨어진 단풍, 울어대는 까치,

실직한 허수아비—

모두가

끝남 속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이었다.

아버지의 글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끝까지 품어내는 것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노래한다.

그래서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동시에 아주 고요한 따뜻함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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