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

”가을 들녘의 노래“


산들산들 소슬바람이 불어오자

방천둑에 늘어선 갈대는

소슬바람에 혼례를 치르는지,

자식들을 멀리멀리 날려 보내면서

흐느끼듯 백발을 흩날린다.

주위의 높고 낮은 산들은

갈대의 하객인 양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잔치술에 취한 듯 덩실덩실 춤을 춘다.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넓은 들녘에는

커다란 컴바인이 굉음을 토해내며

농부들의 땀방울을 손쉽게 거둬들이고,

손으로 쥐어짜면 금세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파란 하늘 속으로는

천둥벌거숭이 빨간 고추잠자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 빙글빙글 맴돌고 있다.

엉클어지고 설클어져 천 년 만 년 살 것 같던 건너편 고구마 넝쿨도

지금은 푸르른 젊음을 잃고 누렇게 빛이 바랜 채,

무서리가 오기 전에 얼른 거두어 드리라고 농부들에게 손짓을 하고,

황구의 꼬리 같은 튼실한 조이삭도

모가지가 디스크에 걸린 듯 축 늘어져 울상을 짓고 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새 떼는

모가지를 타고 앉아 배를 채운다.

들녘의 파수꾼인 키다리 장목 수수도

전역을 앞둔 병사인 양 흐느적거리며

동작이 굼뜨고,

초여름에 흙 맛을 본 들깨는

무서리가 오기 전에 알토랑같이 영글고 싶은지

가지 가득 하얀 꽃을 피우고는

벌과 나비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고추밭은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너덧 개의 빨간 고추만을 매단 채,

힘없이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_______________

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들녘은,

그저 풍성하고 아름다운 가을이 아니다.

수확 앞의 마지막 몸짓,

생을 다해 피워내는 마지막 노래였다.

갈대는 자식을 떠나보내고,

고구마 넝쿨은 늙어 누렇게 변하고,

수수는 전역을 앞둔 병사처럼 휘청거리며,

들깨는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아버지의 시선은

자연의 끝자락에 서 있는 존재들을

다정하게 품는다.

살아낸 모든 것들에 대한 애틋한 존경,

그것이 아버지의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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