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을 앞두고 “

고추밭은 병이 들어서 고추 한 근에 벌써 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어디 고추뿐인가?

한창 영글어가던 오곡들은 모두 태풍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작년 겨울 강추위 때문에 곤충들까지 동사하여 수정이 되지 않아

절반밖에 열리지 않은 과일인데,

그마저 태풍으로 거의 다 떨어졌으니

과수원 농부들의 통곡 소리가 과수원

울타리를 넘는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해안과

서해안의 가두리 양식장마저도

물 폭탄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어부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 여파로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벼농사라도 풍년이 들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태풍이 두어 개는 더 온다고 하니

정말로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지금 정황으로 봐서는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렇게 되면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삼동

살아나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마는,

그동안 너무 흥청망청 살아왔기에

앞으로 살아나갈 일이

눈앞에 주먹 댄 듯 앞이 캄캄해져 온다.

_______________

아버지의 글은,

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겸허함과

절망을 담고 있었다.

농부도, 어부도,

한 해를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왔건만

태풍 한 번에, 비 한 번에

그 모든 수고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아버지는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그려주셨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는 말 뒤에 숨은,

버텨야만 하는 이들의 무거운 체념과 다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 삶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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