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을 앞두고 “
고추밭은 병이 들어서 고추 한 근에 벌써 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어디 고추뿐인가?
한창 영글어가던 오곡들은 모두 태풍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작년 겨울 강추위 때문에 곤충들까지 동사하여 수정이 되지 않아
절반밖에 열리지 않은 과일인데,
그마저 태풍으로 거의 다 떨어졌으니
과수원 농부들의 통곡 소리가 과수원
울타리를 넘는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해안과
서해안의 가두리 양식장마저도
물 폭탄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어부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 여파로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벼농사라도 풍년이 들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태풍이 두어 개는 더 온다고 하니
정말로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지금 정황으로 봐서는 사상 유례가 없는
대흉년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렇게 되면 쥐구멍에 눈 뿌릴 겨울삼동
살아나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마는,
그동안 너무 흥청망청 살아왔기에
앞으로 살아나갈 일이
눈앞에 주먹 댄 듯 앞이 캄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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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글은,
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겸허함과
절망을 담고 있었다.
농부도, 어부도,
한 해를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왔건만
태풍 한 번에, 비 한 번에
그 모든 수고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아버지는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그려주셨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는 말 뒤에 숨은,
버텨야만 하는 이들의 무거운 체념과 다짐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 삶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