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

”어정칠월, 농부의 시간“

시골에서는 음력 칠월이 돌아오면

곡식 키우는 일은 거의 끝이 나고

알차게 영그는 시기라서 오곡이 알차게

영글 때까지는 관리만 해주면

잠시 쉴 수 있기에 어정어정

거린다고 해서 '어정칠월'이라고들 한다.

어정칠월!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어휘지만, 뜻을 음미해 보면 참으로 멋들어진 어휘가 아닌가?

요즘은 시골도 특수작물을 재배하기에

한가한 계절이 없지만,

오곡만 주로 재배하던 옛날에는

칠월이면 흉년과 풍년은 이미 결판이 났기에

한 달쯤은 하늘에 맡기고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칠월이 오면 장마도 끝나고,

벼들은 이삭을 피우고, 조밭에는

개꼬리 같은 조이삭이 피어나

누가 더 이삭이 굵은가 서로 맞대보며 서걱거렸다.

콩밭과 참깨밭에는 꽃들이 한창 피어나는

시기라 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더 좋고,

고구마밭과 옥수수밭도 알이 굵어지는

때라 밭두렁에 풀만 베어주면 된다.

그렇다고 무위도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칠월은 농부들에게 '밀린 일'을 하는 시기다.

겨울에는 동장군 때문에 못하고,

봄에는 씨앗 뿌리고 김매느라 바빠서 못하고,

가을에는 추수에 눈코 뜰 새 없으니,

칠월이야말로 미루어둔 집안 정리,

농기구 수리 등을 해야 하는 때다.

농부들에게 할 일이 없는 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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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글 속 '어정칠월'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는 지혜였다.

눈에 보이는 바쁨이 사라졌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칠월은 여물어가는 시간이고,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 한 단어를 통해

사람이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조용히 알려주셨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바쁘게만 살아가던 나 자신에게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조용한 응원을 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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