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햇볕을 잃은 들녘과 수박을 파는 농부“
한참 햇볕을 머금어야 할 들녘의 오곡들은
햇볕을 보지 못해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키만 멀대처럼 자랄 뿐 무척이나 나약해 보인다.
뜰 앞으로 나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가득 먹장구름이 비를 잔뜩 머금고는
한두 방울 비를 뿌리면서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 저녁을 굶은 시어머니 화상처럼
화가 잔뜩 나서 울화통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처럼 보인다.
"꿀수박 사세요, 꿀수박!"
차바퀴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낡은 트럭 한 대가
물동이 같은 수박을 가득 싣고는 내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데,
수염이 텁수룩하고 서글서글한 눈망울을
한 중년 사내는
누가 봐도 한눈에 농부임을 알 수가 있다.
농사일이 한창 바쁠 텐데,
피땀 흘리며 지은 수박을 중간 장사꾼이
거저먹으려 하니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직접 팔러
나온 게 틀림없어 보인다.
피어야 할 때 피지 못하고,
빛을 받아야 할 때 빛을 받지 못하는 들녘처럼,
사람도 세상도 가끔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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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흙 묻은 트럭, 농부의 굵은 손마디 속에
삶의 치열함과 절실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느낀다.
따뜻하고도 쓸쓸한 풍경.
그래서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