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봄비가 지나간 자리“
봄비는
여름 장대비나 가을비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봄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숨죽이던 생동감이
불끈 샘솟듯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봄비가 지나가면
죽은 듯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도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들녘에도 푸른 융단을 깔 듯 새싹이 움튼다.
한낮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흰구름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뜰 앞으로 나서니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달래가
봄비를 머금고 수줍게 고개를 들고,
복사꽃 가지에는 은구슬 같은 물방울이
오롱조롱 꿰어져
봄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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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봄비는
세상을 다시 숨 쉬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생명까지 깨워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흐린 날에도
어디선가 파릇한 시작이 준비되고 있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느끼게 된다.
봄비가 그친 뒤,
은구슬을 달고 흔들리는 복사꽃 가지처럼,
나도 다시 조금은 환하게 숨 쉬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