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__
”내 고향 제천, 그리고 꽃구경“
내 고향 제천은 아직도 높은 산에는
희끗희끗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으니
한참은 더 기다려야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참으로 꽃을 사랑한다.
삭막하기만 한 겨울 동안 꽃구경을 못해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남녘 사람들이 꽃 구경하러 북녘으로
여행을 온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햇살 퍼지고 나면 안개 걷히듯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내 고장에도 꽃은 흐드러지게 필 텐데,
그 새를 못 참고 꽃구경 간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꽃구경을 일찍 한다고 젊어지는 것도 아니고,
늦게 한다고 먼저 늙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정작 내 고장에 꽃이 피면 언제 피었다가
언제 졌는지 별 관심도 없이 무덤덤하면서도,
꽃구경 간다고 호들갑을 떠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머지않아 흐드러지게 필 복사꽃을 생각하노라니,
어린 시절 친구들과 복숭아 과수원으로
복숭아 서리를 하러 갔다가
주인한테 붙잡혀 곤욕을 치른 일이 생각난다.
보리와 밀타작이 끝나면 마을에 하나뿐인
복숭아 과수원은
먹음직스럽게 복숭아가 익어간다.
과수원이 한적한 구석지에 있었다면 그래도
눈에 띄지 않아서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하필이면 마을 어귀인 동구밖에 있는지라
하루에도 몇 번씩 눈에 띄어 과수원을 지날 때마다
군침만 꼴깍꼴깍 삼켜서 목젖만 괴롭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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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글을 읽으며 '기다림'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흘러가는 계절을 조급하게 잡으려 하지 않고,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맞추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삶의 자세처럼 느껴졌다.
복숭아 과수원을 멀찍이 바라보며 목젖만 삼키던 소년,
그 모습이 왠지 지금 내 마음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를 서두르지 않고,
지금 내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이 쌓여서
진짜 내 안에 꽃이 피어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