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장들___

”소나기와 제실“

뜨겁던 대지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자,

떡시루에서 김이 오르듯 모락모락 대지에서

안개 같은 김이 오른다.

"꽈-꽝!"

잠시 섬광이 번쩍이더니 벼락 치듯 천둥이 친다.

왕릉 같은 산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서까래에는

거미줄이 흉물스럽게 걸려 있다.

제실 분위기는 침침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한데,

산소 앞에 세워진 커다란 비석들은

마치 비석 주인이 시원한 비를 맞으려고

무덤을 뚫고 나와 서 있는 것만 같다.

사람이 무섭지 죽은 귀신이 뭐가 무섭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음산한 남의 제실 추녀 밑에 있으려니

눈길이 자꾸만 제실 안으로 돌아가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든다.

억수 같던 소나기가 한참을 퍼붓더니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부슬부슬 가랑비로 변한다.

소나기는 삼 형제라고 하더니,

맏형이 지나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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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글을 읽으면서 느꼈다.

아무리 이성으로 다잡으려 해도,

자연과 고요 속에 홀로 서 있으면 마음 깊숙이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소나기의 거친 기운,

젖은 흙내음,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티는 한 사람의 마음.

이 모든 것이 거창하지 않게,

담담하게 쓰였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젖어온다.

나도 가끔, 아무 일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괜히 마음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아버지의 문장은, 그런 순간들과 아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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