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와 말하기

숙제하듯 살다가

by 다시 봄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잘 듣는 사람이 있고 호응을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직장에서는 주로 잘 듣는 쪽이었고 사적인 모임에서는 추임새까지 넣는 편이었다. 내심 화제를 주도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해서,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은근히 부러워했다. 또 싱글이다 보니 기혼 여성들이 많은 모임에서는 이야기에 끼어들 여지가 더욱 적었다. 대화라기보다 해소의 모양새로 이어지는 말들은 ‘왜, 언제’를 따지지 않고 시작되었다가 끝이 나버려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싱글인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가고 싶은 여행지와 개봉 영화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들의 뒷말을 편하게 쏟아붓다가 마지막에는 남자는 언제 만날 거냐는 소용없는 질책을 하며 헤어졌다.

그런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이 헛헛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기보다 정보만 주고받으면서 모임 시간을 때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더 친밀한 모임에서는 속 깊은 이야기도 오고 갔는데 대부분 직장생활에서 입장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억울함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할 말들이 많았다. 앞선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어느새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욕하고 싶은 에너지가 스르르 사라졌고 애써 내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다시 듣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누구나 지지받고 싶고 같은 편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심정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었기에 그럴 때 들어주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었다.


오래된 친구를 일대일로 만날 때는 듣기와 말하기가 비슷한 양으로 오고 갔다. 잘 들어주는 친구를 믿고 때로는 많이 말하는 쪽이 되어 감정을 끌어올릴 때가 있었다.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날도 밑바닥 말까지 길어 올리고 있었다.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고 있던 친구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넌 네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 모두 다?”라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순간 멈칫한 나는 ‘당연히 다 할 수 있지, 너한테 라면.’이라고 하려던 말을 조용히 삼켰다.


친구 얼굴은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건 처음 본 화난 표정이었다. 아마도 소통이란 명목으로 친구의 마음을 무례하게 두드렸던 것 같다. ‘내가 말한 만큼 너의 것을 보여줘.’라는 유치한 감정을 드러내는 바람에 평소 표정과 말투를 거두어들인 친구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것이다. 순간 우리 사이에 선이 그어졌고 잠시 분위기가 서늘했지만, 다행히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상대의 반응으로 내 주제 파악이 된 것은 부끄러웠지만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이 잠시 만져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말의 양만큼 마음이 오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듣기도 말하기도 지쳤을 때 서점에 갔다. 조용히 말 걸어주는 책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줄 힘이 생기곤 했다. 펜을 들어 밑줄 긋고 눈과 마음에 새기면서 공감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백희나의 동화, 김형경의 소설, 정혜윤과 은유의 에세이가 그랬다. 읽은 글들이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기를 바랐지만 잠깐의 위안으로도 괜찮았다. 모자랐던 건 말이 아니라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알고 있었던 것과 몰랐던 것이 정리되고 채워지는 사이 괜히 고집부리던 것을 개운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쏟아내고 싶었던 것은 불안이었을 것이다. 아침마다 출근하고 저녁마다 퇴근을 하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살아가면서 그 끊임없는 반복에도 불구하고 완성되지 않는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인정해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넌 괜찮아”란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영화나 책, 매스컴 속의 영웅처럼 지구와 인류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건네는 순간의 말이 상처가 되는 일만이라도 줄여나가고 싶다. ‘괜찮고 싶은 너와 나’를 알아보고, 표정을 살피고, 기다려주면서. 상대가 어느 날 그었던 선을 밀고 “요새 읽을 만한 책 없어?”라거나 “넌 요즘 뭐가 재밌어?”라고 먼저 물어온다면, 그때 밑줄 그어놓았던 책을 내밀거나 기억해둔 동영상 링크를 보내주는 것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도 제법 듣기와 말하기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이것 역시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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