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하듯 살다가
이제 끌리는 대로 살아보자 하던 중에 현대 미술사 강의를 듣기로 했다. 인스타로 팔로잉하던 독립서점의 안내문을 읽고 무작정 신청을 한 것이다. 현대는커녕 고전 미술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망설임이 긴 것도 습관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녁 7시, 조용한 주택가 모퉁이에 불을 밝힌 서점으로 들어가니 나이대가 다양해 보이는 대여섯 분의 참여자들이 먼저와 앉아 계셨다. SNS로 보던 곳을 실제로 왔다는 설렘도 잠시, 강사님은 간단히 서로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자기소개?
고작해야 나흘간 수업을 듣는 사이일 뿐인데 어떻게 지금의 나를 소개해야 할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공. 무. 원. 세 글자면 간단했을 형식적인 절차가 갑자기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엔 이름만 간단히 말했지만, 거침없이 활발하신 강사님의 연이은 질문으로, 이십 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을 했으며 앞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덜 익은 생각까지 실토하고 말았다. 일인 출판사 대표이자 산문집을 쓰신 강사님은 다양한 응원을 해주셨고 수업 역시 유익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떠올린 것은, 자기소개 때 머뭇거렸던 짧은 순간이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고 그래서 번거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나라는 사실이었다.
요즘 오후 일과는 보통 방 청소로 시작한다. 처음엔 눈에 보이는 것들만 닦고 치우다 어느 순간 본격적인 정리와 재배치로 몰입하게 되었다. 시작은 옷장 정리부터였다. 수납 상자 여섯 개에 꽉 찬 옷들과 그 위로 쌓여있던 것들까지 다 끄집어내어 계절별로 나눈 다음 몇 년간 입지 않은 옷들을 따로 빼놓았더니 폐기물 마대 두 장 분량이 나왔다. 다음은 신발장. 이제는 신을 일 없는 힐과 휴양지용 슬리퍼, 발이 불편했던 운동화들을 쓸어 담아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싱크대 아래위 서랍을 정리하니 각종 일회용 젓가락과 쇼핑백이 쏟아져 나온다.
집을 정리하는 기세를 몰아 노트북과 핸드폰까지 손을 뻗었다. 사진과 문서 파일, 저장만 해둔 연락처를 지웠다. 가지고 있는 물건과 관계가 단출해지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세계가 줄어든 기분도 들었다. 새로 생긴 공간을 채울 것들을 생각하다가 몬스테라와 로즈메리를 주문했다. 러닝머신을 치운 베란다 앞 공간에는 책상을 옮기고 당장 읽을 책은 위로, 그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책들은 아래로 꽂아두었다.
세 글자로 나를 대신했던 삶을 계속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쓰던 힘을 계속 썼을 것이므로 ‘내가 맞다.’를 고집하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에 끌려다녔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거뜬하다는 얼굴을 하고 하루를 견뎠을 테고 ‘어떤 사람’ 보다는 ‘어떤 역할’을 해내는 것이 나인 것처럼 살았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의 희생양인 것처럼 자신을 연민했다가 자기 계발서 문장을 찾아 몰아세우다가를 반복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것에 희생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므로 억울한 표정은 덜 짓고 살게 되지 않을까.
돌아보면 나이보다 정신이 먼저 성장해 있었던 경험이 적다. 애는 썼지만 솔직히 나이만큼 성장하기도 힘들었다. 필요하다고 그때그때 사들였던 물건들처럼 키우지 못한 단편적인 생각들은 잠시 떠올랐을 뿐 행동이 되지 못했다. 생각이 중구난방인데 말과 글이 단련되었을 리 없다. 정리되지 않은 말을 하느니 입을 다물자 했더니 하고 싶은 말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해결책이 필요했고 글이 쓰고 싶어 졌다.
40대까지 보내고 나니 멈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속도를 늦추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다음, 그다음을 위해 살았지만 어디까지 가야 마음이 놓인단 말인가. 빨리 가려는 마음은 공회전하듯 소란스럽기만 했을 뿐이었다.
주말에 카카오 TV로 미사를 보아야 하는 엄마가 앱 깔기에 실패하고 속상해하는 것을 저녁 먹다 말고 타박 없이 들어주는 것, 앱을 설치하고 켜드린 영상으로 미사를 보는 엄마를 안 보는 척하며 보고 있는 것. 다시 오지 않을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겠다.
공자님의 지천명은 꿈도 꾸지 않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낌새라도 잘 알아차리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엉덩이 힘인지 손가락 힘인지 모르게 쓰고 있는 글들이 쌓여 갔으면 좋겠다. 50을 맞이한 나에게, 방해 없이 키운 생각으로 발랄한 시간을 보내보라고 너그럽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