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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Mar 03. 2020

오늘도 나는 춤을 춘다

춤이 선물하는 행복의 마법

나는 유치원 시절, 세뱃돈을 더 받기 위해 혼신의 개다리춤을 추곤 했다. 그러면 몇 명의 사촌 동생들도 나를 따라 춤을 췄다. 사촌 누나들은 HOT의 <캔디>를 따라 췄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한창 유행이던 브레이크 댄스에 푹 빠졌었다. 온몸에 시퍼런 멍이 생겨도 신나게 몸을 내던졌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어느샌가 내 삶 속에서 춤은 사라졌다.   

   

그렇게 멈춰버린 춤의 스위치는 결혼 후 다시 켜졌다. 신혼집의 식탁 옆, 거실도 없는 싱크대 앞이 우리의 무대였다. 1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 우리는 그곳에서 행복한 춤을 췄다. 그럴싸한 음악이 없더라도,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췄다. 커피포트의 빨간불이 사라지는 잠깐의 시간,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기분 좋게 기지개를 펴는 잠깐의 시간. 그럴 때 우리는 춤을 췄다.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처럼 넓고 웅장한 환경은 아니지만, 그저 손을 마주 잡고, 몸의 중심을 좌로 우로 옮기는 작은 움직임으로 춤을 췄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춤출 때 옆으로, 뒤로 두어 걸음은 더 갈 수 있다. 우리의 무대가 조금 더 넓어졌다.     


우리가 로맨틱한 춤만 추는 건 아니다. 순전히 상대방을 웃기기 위한 춤도 춘다. 남들에겐 절대 보여줄 수 없는 그런 동작들로 춤을 춘다. 내가 주로 추는 춤은 새의 날갯짓을 표현한 춤이다. 아니 몸짓이다. 무표정으로 춤을 춘다. 아내는 어떤 춤을 추든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우리 둘 다 참 웃긴 모습으로 춤을 춘다. 어느덧 우리는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마음껏 춤을 춘다. 이 순간 체면이나 권위는 필요 없다.     


나의 아들은 생후 6개월 즈음부터 음악에 반응해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곤 했다.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모든 아기들은 웃으며 몸을 흔든다. 인간에게 춤은 본능인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들썩이던 어깨와 엉덩이에 무언가가 제동을 건다. 그리고 그저 박수 정도로 춤을 대신한다.      



혼자 추는 춤은 재미가 없다. 혼자 춤을 추면 마더의 김혜자가 떠오른다. 즐겁지 않고, 무섭고 음산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아내와 춤을 출 때는 그저 즐겁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 받는 기분이 든다. 멋지고 근사한 몸짓은 아닐지라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충만감이 올라온다. 행복해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춤을 추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이게 결혼한 부부의 묘미가 아닐까.     


혹시 아내와 춤을 춰본 적이 있는가? 너무 오래된 이야기인가. 이 나이에 주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 저녁 수줍은 미소와 함께 아내의 두 손을 잡으며 '우리 춤 좀 춰볼까?'라고 해보길 바란다. '이 사람 왜 이래' 싶은 표정과 등짝 스매시를 맞을 수 있지만, 그 뒤에 옅게 퍼지는 아내의 소녀 시절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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