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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Oct 15. 2020

마음의 그릇장

나와 가족의 그릇 확인하기

제작진 : “예, 수고하셨습니다.”

엄마 : “와, 끝났다.”

나레이션 : 끝났다는 말에 즐겁게 방을 나서는 모녀. 이 순간을 기다렸나 봅니다.


아내의 권유로 EBS에서 방영된 ‘놀이의 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놀이를 하는 장면을 통해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에 대해 알아보는 실험을 하는 장면이었다. 위의 대사는 부모와 아이의 놀이에 관한 실험에 참가했던 모녀가 놀이를 막 끝내고 나올 때 보인 반응이다. 이어진 엄마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본인을 ‘잘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라고 소개한다. 조금 민망한 웃음과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엄마를 보는 내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저 엄마.. 힘들었겠다...’


아들을 재울 겸 나온 오후 산책길에 아내와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아내는 항상 사람에 대한 배고픔이 컸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인사와 함께 언제 집에 갈 건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래야 손님과 헤어질 때 덜 서운했다고 했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준비해야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던, 아내는 그런 아이였다. 기질적으로 그런 것인지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부모님이 그리워서인지 모르지만 그만큼 어린 시절 아내의 사랑 그릇은 유달리 컸던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바쁜 와중에도 그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랑 그릇에 사랑을 충분히 부어주셔서 지금의 정도 많고 측은지심도 많은 어른으로 큰 것 같다고 아내는 이야기했다. 지금 사랑 그릇이 큰 아이는 나중에 그 커진 사랑 그릇 속에서 마르지 않는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매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는 사랑을 베풀 자질이 있는 아이로 봐야 한다고.

사람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은 정해져 있다. 나는 밥 한 공기, 아내는 밥 반 공기. 아들은 아기 밥그릇으로 한 공기. 먹는 밥도 차이가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각기 다른 여러 모양의 그릇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인정이 많아 사랑의 그릇이 유달리 커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항상 평온해 보이는 안정의 그릇이 커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각자 타고난 기질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마음속 그릇장에 다양한 그릇들을 가지고 있다.


자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면 먼저 나와 배우자의 그릇을 잘 알아야 한다. 각자 마음속 그릇들의 크기가 어떤 모양과 용량인지를 알고 있지 않으면, 내 자식의 마음속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아이의 마음 그릇을 잘 살펴봐야 한다.


‘내 아이는 놀이의 그릇이 크구나’

‘내 아이는 세상을 탐색하는 그릇이 크구나’

‘내 아이는 지적인 호기심 그릇이 크구나’


마지막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 그릇을 살펴봐야 한다. 나와 배우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해야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풍부한 것은 나의 돌봄 안에서 채워주고, 나에게 부족한 것들은 주양육자가 아닌 배우자,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와 친구들 또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내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 마음속 그릇장부터 살펴보길 권한다. 그리고 아이의 그릇장을 살펴보라. 아이에게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그릇들이 무엇이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의 그릇이 가득 찬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그 그릇 안에 담긴 부모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그럼 오늘 당장 보채고 있는 이 아이의 투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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