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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22. 2024

5년 기자 생활을 끝낸 이유

더 이상의 출근은 없어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는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는다. 중학교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다. 어른들은 나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내 꿈을 지지했고, 친구들은 나도 너처럼 꿈을 갖고 싶다며 부럽다고 했다. 그 시절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동력과 인생 계획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적 맞춰 과를 선택하며 방황하던 또래들과 달리 원하는 과에 입학했다. 큰 고민 없이 4학년 때부터 언론사 시험을 보러 다녔고, 운이 좋게도 졸업 전 입사할 수 있었다. 성공과 실패가 인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목표 아래 이뤄낸 자잘한 성취는 인생에 대한 은은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았다면, 일도 곧잘 해냈을 것이다.


기자의 삶에 대한 상상이 퍽 허술했음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직업에 대한 결정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 비해 빈곤한 상상이었다. 어쩌면 특정 직업군에 대한 상상은 필연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로서의 해야 하는 업무가 나와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아니겠지, 그냥 일을 시작하고 정신없어서 그런 거겠지. 무섭게 떠오르는 생각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로서 처음 하는 일은 ‘사스마와리’였다. 하루종일 맡은 지역의 경찰서를 전전하며 기삿거리를 찾다가, 경찰서 세면대에서 대강 씻고 허름한 공간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다시 어제와 같이 경찰서를 돌아다니는 일. 때는 롱패딩을 입어도 추운 12월, 끊임없는 보고 때문에 찬 바람에 노출되어 터진 손등에 약국에서 산 연고를 치덕치덕 바르곤 했다. 어느 누가 그런 일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겠나.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인간을 손쉽게 가리기 위한 비인간적인 노동 현장, 첫인상이 구리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진짜 일을 시작하면 좀 달라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하지만 부서를 옮기고, 새로운 취재처를 담당해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손등이 갈라지기는커녕, 비싼 밥을 얻어먹고 다니며 배부르고 등 따스한 나날을 보냈음에도 그랬다. 누군가는 회사가 안 맞을 수 있다며 이직을 권유하고, 누군가는 부서를 옮겨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분명히 알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맞지 않는 거였다.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일에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유능한 기자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의미 있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책상에 앉아 혼자 고민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기자는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해 전문가보다 결코 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야의 사람과 대화를 해야 의미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그런 것을 친절하게 말해줄 리 없다. 모종의 방법을 통해 어떻게든 관계라는 것을 쌓아야 한다. 나는 그런 것을 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잘해야겠다는 의지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바꾼 코로나19가 터졌다. 합법적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사실 기자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전에도 짬짬이 자체적으로 재택근무를 했지만, 긴 시간 동안 당당하게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회사 방침에 따라 집에서 내내 근무를 했다. 일부 사람들은 집에서 일하는 게 답답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사람을 만나야 취재가 된다며 전과 같이 취재원을 만나는 선배들도 많았다. 당연히 나는 반대였다. 나는 그 언제보다 거리 두기 덕분에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감염이 우려된다는 것을 핑계로 취재원을 만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약속 없이 텅 빈 캘린더가 무한한 자유를 선사했다. 그 자유가 그렇게 달콤한 건지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더 이상의 출근은 없다. 언젠가 기자를 그만둔다면,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인간은 또다시 바이러스를 이겨냈고, 일상이 돌아왔다. 퇴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잠시 숨었다가 나타났다가 했다. 기자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줄곧 변하지 않았지만, 퇴사를 갈망하는 무수한 직장인들의 현실이 그렇듯이 쉽게 직장을 때려치울 수는 없었다. 어느새 적응된 업무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즈음, 그러니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의미 있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럭저럭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을 때였다. 스스로의 변화와 선배들의 면면을 살피며 유능한 직업인이 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회 초년생의 뻔하고 재미없는 통과 의례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TF팀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꾸려졌을 때였다. 열정 넘치는 새로운 대통령은 인수위를 통해 앞으로의 정부를 구상하는데, 매년 대선 직후마다 언론사 취재 경쟁에 불이 붙는 시기였다. 각 부서에서 1~2명씩 차출되면서 나도 TF팀에 들어가게 됐다.


전혀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다. 인수위가 있던 통의동으로 출퇴근하며 하루아침에 지금까지와 다른 분야를 취재해야 했다. 예고 없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누구에게나 당혹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기자에겐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꼭 TF팀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출입처로 보내 진다. 해야 할 일이 친절하게 적힌 인수인계 파일 같은 것은 없으며 적응은 각자의 몫이다. 심지어 새로운 출입처에 간 첫째 날, 운 좋으면 둘째 날에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기사를 써야 한다. 통의동 인수위 마당에 설치된 천막 아래 앉아 있는데,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고 싶다. 퇴사할 거야. 남들도 이제 듣지 않는 반복되는 투정이 아니라,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 내고 진짜로 퇴사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럭저럭 적응하며 사는 일.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회사라는 조직에 남게 된다면 펼쳐질 나의 미래였다. 사실 스스로 퇴사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았을 뿐,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란 사실만으로 퇴사의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갑자기 퇴사하면 팀원들에게 어느 정도 피해가 갈 텐데, 그렇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급하게 회사를 나올 필요는 없었다.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기자가 올 수 있게 인사이동 시즌에 맞춰 회사를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나니 천막 아래 앉아 있는 하루하루가 나름대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해 상반기가 끝날 때쯤 예상대로 인사 희망 안을 적어 내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그날 마감을 끝내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사 이유를 묻는 선배에게 ‘기자 하기 싫다’는 말은 안 했다. 그냥 지쳐서 쉬고 싶다고 했다. 쉬면서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 싶다는, 어딘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듯한 다소 모호한 말이었다. 나의 새로운 꿈은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삶이라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원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만으로 박수받는 시기는 한참 지났고, 모두들 원하는 것을 속에 깊숙이 넣어두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진심을 다해 따뜻한 말을 남겼다. 일은 몰라도, 다행히 태도는 괜찮았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싫어서 퇴사를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 덕분에 그나마 5년이나 버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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