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밖 돈 벌기의 시행착오 4 ] 베트남 1년 해외 봉사
정기적인 임금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결정과 실행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사에 대한 고민과 실행에 장장 5년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1년짜리 해외 봉사는 단숨에 결정됐다. 우연히 공고를 봤고, 며칠 정도 생각해 보다가, 마감 전날에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지원한 후 차주에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해외 봉사를 갈 것 같은데 1년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전까지 해외 봉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내가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나에게 있어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하고, 떠날 수 있느냐 묻는다. 나는 그때마다 “가진 게 없잖아요”라는 말로 기나긴 답변을 갈음한다. 물질적인 것은 없어도 적어도 무형의 것들에 있어서는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에게 농담 같은 말이긴 하지만, 반쯤 진심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은퇴자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해외 봉사란 다른 중요한 무언가의 포기를 동반한다. 예를 들어 직장인에게는 단순하게 보면 돈을 벌 1년의 기회를 버리는 것이자, 깊게 보면 퇴사나 휴직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나 재취업의 어려움까지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해외 봉사를 가더라도 애초에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잃을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토록 내가 어렵게 쟁취한 자유를 얼마간 잃을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내가 온 해외 봉사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제도권에 다시 묶이는 것이며, 계약에 따라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정기적인 출퇴근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며칠간 봉사를 왜 가고 싶은지 생각했다. 당시 퇴사 후 1년 8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그때의 삶은 참 안온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은 겨우 이것뿐인가?’라는 물음이 들기도 했다. 나의 삶에 좀 더 순도 높은 행복이나 가치가 있을지 궁금했다. 흔히 가치가 높다고 여겨지는 활동 중 하나가 봉사인데, 구체적으로 그 행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탐구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봉사 경험을 쌓아 왔을 것이다. 나의 경우 노인 요양원, 보육원, 도서관, 학교, 행사장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봉사를 했지만, 하지만 단 한 번도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한 적은 없다. 중고등학생 때는 필수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나 생활기록부를 한 줄 더 쓰기 위해서, 대학생 때는 취업용 자기소개서에 작성할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 봉사했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봉사 비스무리한 것은 수십 번 해왔지만, 진정한 봉사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경험은 한 번도 하지 못한 셈이다. 봉사의 가치를 알고자 한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런 마음을 가져도, 무턱대고 아무 봉사 활동이나 시작한다면 나약한 의지력으로 머지않아 쉽사리 꺾일 수 있다. 그래서 일종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고자 했고, 장기간 해외 생활을 해볼 수 있다는 분명한 이점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그 필요성이 설득되는 분야와 내가 실제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았다. 내가 봉사하게 된 곳은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 이후 혼인 종료로 인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온 베트남 귀환 여성과 한베자녀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NGO였으며, 전반적인 운영 지원과 홍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귀국 후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 정도 적응이 완료된 후에 나는 종종 이 결정에 대해 생각했다.
‘봉사 최고, 여러분 모두 봉사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 봉사 자체가 다른 어떤 행동과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질 만큼 어떤 뚜렷한 만족감이나 가치는 없었다. 이곳은 자전거로 10분 만에 출근이 가능하며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정기적 출퇴근을 동반한 봉사 활동은 나에게 전혀 맞지 않다고 느꼈다. 이따금 왜 8시부터 5시까지 앉아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한국에서의 자유가 그리웠다. 주관적 행복감으로 따지자면, 하루를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게 자유롭게 살아내었을 때가 더 나답고 행복했다. 누군가는 봉사 대상자인 아이들이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하는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뿌듯함은 스쳐갈 뿐 혼자 취향에 맞는 드립 커피 마시면서 책 읽는 게 더 즐거웠다.
아무리 1년짜리라도 어떤 체계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좀이 쑤셨지만, 내가 스스로 약속한 봉사 활동을 책임감 있게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회사와 비교 시 낮은 업무 강도였고 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중단해야 할 만큼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활동의 끝에서 생각이 변할 여지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신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그동안 미뤄왔던 몇 가지 행동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새로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약속이 없는 삶이 꽤 나에게 맞다는 점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운동을 해도 시간과 에너지가 널널하게 남았다. 주말은 더욱 한가했고, 나는 텅 빈 시간에 미뤄두었던 글쓰기나 영어 회화 공부 같은 것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체력으로 출근할 힘을 얻곤 했다.
얼마간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봉사의 가치를 알기 위해 떠나온 베트남에서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매일 발견하고 있다. 봉사가 끝날 때쯤 봉사가 나에게 별다른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지나온 1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바로 그 사실을 알기 위해 떠나온 것이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예상치 못했으나 본 목적에 준하는 무수한 깨달음을 보너스로 얻었다. ‘가진 게 없다’는 말은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많다는 뜻으로, 새로운 생각들을 가득히 채워 가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치열하게 지키고 가꿔온 하루를 언제든지 과감히 버린 채 가진 게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유연하게 시도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험하고,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것들을 섬세하게 찾아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