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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Jan 07. 2022

퇴사 후 한 달,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

퇴사 후의 삶과 깨달은 점

대학 졸업 후 바로 약국에 취업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이직이 있었지만, 대부분 퇴사 후 곧바로 다시 취업을 했기에 중간에 쉬는 기간이 그리 길지않았다. 혹 시간이 있더라도 근무하는 동안 갈 수 없어서 미뤄두었던 해외여행을 다녀왔기에 정말로 '그냥 쉬는' 시간은 없었다.


작년 12월, 7년 동안 다니던 약국을 그만두었다. 내 의지에 의한 퇴사는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진 2층 병원이 폐업을 했고, 덩달아 약국 경영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결국 약국장님으로부터 권고사직을 권유받았고 어쩌다 보니 퇴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약국 특성상 연차도 없고 쉬는 날이 거의 없기에 (심지어 여름휴가도 금토일 3일이다...!!) 오랜 근무로 조금 지쳐있는 상태였다. 한편으로는 그만두고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새로 직장을 구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권고사직은 마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느낌'이랄까? (이건 좀 아닌가..?ㅎㅎ) 암튼 그 말을 들었을 때 걱정보다는 후련한 느낌이었다.


나도 자유다!!!




쉼 없이 달려오던 나의 삶에 '잠시 멈춤 버튼'이 눌러졌고 계획에 없던 긴 휴식이 주어졌다. 언제까지 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행인 것은, 나에게는 통장을 지키고 있는 든든한 퇴직금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퇴직금이 너무 쪼그라들어 마음의 여유가 바닥나기 전까지는 이 휴식을 마음껏 즐겨보려 한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이렇게 다음 직장을 정해놓지 않고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기에 조금 낯설지만,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셀프 방학'이라는 생각으로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해오던 많은 루틴들을 일정 부분 내려놓고, 쉬는 동안만큼은 푹 자고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앞만 보고 나아가던 것을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디로딩 타임을 가지는 중이다. 어쩌면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이기에 빨리 일을 시작해야 된다는 조급함은 버리기로 했다.


퇴사 후 처음으로 한 것은 아침 기상 알람 끄기!

출근 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해왔지만, 이제 나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서 더 이상 알람 소리에 억지로 깨지 않고, 저절로 눈이 떠지는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별 것 아니지만 휴대폰 알람을 해지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해방감과 행복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일주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뭔가 특별한 걸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놀 때는 시간이 너무 잘 간다. 매년 출근하느라 도와주지 못했던 김장도 함께 하고, 평일 오전에 혼자 조조영화도 보고 왔다.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양껏 빌려와서 읽고 드라마도 몰아서 다시 봤다.




요즘 나의 일과는 이러하다.


푹 자고 일어나 간단한 아침 루틴 후 오전에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하나씩 쓴다. 천성이 생산적인 인간이라 뭔가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느끼는 탓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여유 시간이 많이 없어서 매일같이 쓰지는 못했는데, 요즘은 시간이 많으니 매일 쓴다.


마치 공장을 가동하듯 매일같이 머릿속을 가동해 뭔가를 써 내려가는 나를 보며, 동생은 우스갯소리로 글을 찍어내는 '글 공장' 같다고 말했다.(여담이지만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명이 '글 조제실'인데 그걸 두고 조제실이 아니라 공장 같다고 하는 말이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간다. 그러면 점심을 먹고 낮에 가볍게 걷기 운동을 다녀온 후, 저녁에는 책을 읽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놀랍지만 이렇게만 해도 하루가 꽉 찬다.


주변의 친구들은 쉬면 심심하지 않냐고 매일같이 뭐하냐고 물어보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시간이 넘쳐나서 지겹다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내가 느끼기에 퇴사 후의 내 삶은 꽤 괜찮다. 아니 무척 만족스럽다. 예전보다 좀 더 자주 행복을 느끼고 가족들에게도 "나 요즘 너무 행복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알람 소리 없이 평화롭게 눈 뜨는 아침, 부모님이 나가신 후 집에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지만 햇빛이 있어서 따뜻한 낮에 걸을 수 있는 여유, 시간 제약 없이 읽고 싶은 책과 보고 싶은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 자유.


이 모든 것이 매일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고, 그 속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이다.




돌이켜보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경험한 나의 약국 근무는 꽤나 파란만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도 겪기 힘든 일들이 있었고, 자의, 타의, 상황에 의한 퇴사를 모두 경험해보았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약국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폐업을 해서 갑자기 백수가 되었던 일, 근무하던 약국을 갑자기 다른 분이 인수하게 되면서 그만두어야 했던 일(인수하셨던 분이 부부 약사라서 근무 약사가 필요 없었다..)그리고 이번엔 코로나로 인한 퇴사까지.


여러 번의 퇴사와 이직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직장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내가 해야 될 업무에는 최선을 다하되 필요 이상으로 희생하거나 매달리지 말자는 것이다. 과하게 애쓰지도, 과한 기대도 하지 말자. 다만 충실한 직장 생활을 통해 내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면, 높아진 경험치는 이직의 순간 나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퇴사 후의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다.


마치 은퇴 후의 삶을 미리 경험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들 빨리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FIRE 족'이 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삶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쉬는 동안은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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