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약사 Jan 26. 2022

실업급여는 처음이라

어쩌다 보니 퇴사를 하게 되었고, 자의에 의한 퇴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애 실업급여를 받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말로만 듣던 실업급여를 직접 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묘하다.


실업급여란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실직하여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에 소정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와주며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여기서 알아야 될 점은 단순히 실업에 대한 위로금이나 고용보험료 납부의 대가로 실업자 모두에게 지급되는 돈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비자발적 사유로 퇴사하게 되었고, 재취업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는 조건이 있다. 또한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기간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나의 경우 권고사직으로 인한 퇴사였기에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고, 신청해보니 7개월 동안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은 실업급여라는 안전장치 덕분이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은 이제 없지만 실업급여라는 지원군과 퇴직금이라는 예비군이 있기에 든든하다.




최초 실업급여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고용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처음 가본 고용센터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대부분 50~60대로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그 속에서 괜히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며 담당 창구로 가서 신청했더니 생각보다 간단하게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1차 실업급여 신청에 대해 간단히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우편함 보니 내 앞으로 작은 수첩이 하나 와있었다.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


바로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신념이 있는 한 기회는 반드시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재미있다. 실의에 빠진 실업자에게 재취업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인 듯하다.


처음에만 고용센터에 방문하여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나머지는 모두 비대면으로 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출석일에 직접 센터에 방문하고 구직활동도 해야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모든 것이 비대면이다. (이럴 때는 코로나 시국이라는 것이 조금 좋기도 하다.)


구직활동 대신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한 시간 정도 되는 동영상 강의 듣고, 정해진 양식을 완성한 후 지정된 날짜에 인터넷으로 전송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동영상 강의를 틀어놓고 딴짓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중간 일정 시간 이내에 다음으로 넘어가는 버튼을 눌러야 되는 장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틀어놓고 느슨하게 듣다가 소리가 멈추면 한 번씩 클릭해준다.(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요..?ㅎㅎ)


전송은 정해진 날짜 오전 8시 안에 해야 한다.(왜 낮 시간이 아닌 이런 시간대인지 알 수 없다. 출근 안 한다고 늦잠 자지 말라는 건가...) 혹시 늦잠을 자거나 잊어버리고 시간을 넘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나는 전날 밤 12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뭐든 할 일은 미리 해놓아야 안심이 되는 성격이라, 졸려도 기다렸다가 12시가 넘으면 전송해놓고 마음 편히 잔다. 여담이지만 학교 다닐 때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공부가 잘 된다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는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불안해서 공부가 더 안 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만 그렇게 하면 되기 때문에 다행스럽다. (매일같이 하라고 했으면 아마 스트레스 받았을지도...) 


무사히 전송을 마치면 카톡으로 알람이 온다.

'인터넷 실업인정 신청이 정상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급여는 전송을 마친 다음날 오후 5시쯤 칼같이 들어온다.
'구직급여 ------원 농협 입금되었습니다.'

사전에 입력한 내 계좌로 구직급여가 지급된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한 시간 정도 투자하는 작은 수고로 이런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비록 예전에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을 충당하기에는 충분하다.


요즘 나는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대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바꾸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달 내내 출근해서 일한 대가로 받는 월급 대신, 내 시간을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근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소비도 줄어든다.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아서 외식비도 줄어들고, 외출을 하지 않으니 쇼핑도 덜하게 된다. 옷을 사도 입고 나갈 곳이 없으니 옷 욕심도 없어진다. 예상치 못한 퇴사의 장점이랄까. 그래서 수중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줄어들었지만, 아직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처음 일주일은 대기 기간이고, 대기 기간 이후의 8일 치가 먼저 1차 실업 급여로 지급된다. 그리고 2차부터는 28일분씩 한 달에 한번 지급되는 시스템인데 나는 현재 2차까지 받은 상태다. 7개월을 꽉 채울 때까지 쉴 생각은 아니지만 노는 것이 지겨워질 때쯤 다시 일을 하려 한다. (과연 그런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ㅎㅎ)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재취업을 할 때까지는 국가에서 주는 돈을 감사히 받으며 푹 쉬어야겠다. 실업급여는 그동안 일한 수고에 대한 격려금, 재취업을 응원하는 지원금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참 좋은 제도다!


2차 실업급여를 받은 날, 뭔가 공돈을 생긴듯한 기분이라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

"엄마~~ 나 돈 들어왔어!"

"좋겠네~~ 그럼 우리 오늘 맛있는 거 먹는 거야?"

엄마가 반색하며 기뻐했다.

'벼룩의 간을 내어먹지...' 잠시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기분 좋게 대답했다.


"그래, 오늘 내가 한 턱 쏜다!"

이전 01화 퇴사 후 한 달,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