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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Jan 12. 2022

퇴사 후 좋은 점 12가지

행복이 뭐 별건가.

퇴사한 지 한 달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퇴사 후 초기에는 밤에 누워도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았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거나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불면증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동생에게 이야기했더니 일을 안 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꿀잠을 자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출근을 해야 된다는 처방을 내려주었다.


출근해서 움직이고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낮에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도 쓰며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그만큼의 에너지가 소비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으니 잠이 안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한 번도 깨지 않고 보통 7시간 반~8시간씩 꿀잠을 잔다. 오늘도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엄마가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우리 백수 이제 일어났나? 잠이 안 온다더니 이제 완전히 적응을 했나 보네. 다시 일하러 가려면 힘들어서 어쩌겠노?"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뭐하러 미리 걱정을 해?ㅎㅎ 또 적응하겠지. 사람은 다~ 적응한다."


이런 싱거운 대화를 나누며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시작한다. 퇴사 후의 삶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니 이제 '퇴사 후 좋은 점'에 대해 적어볼 여유도 생겼다.





# 퇴사 후 좋은 점


1. 알람이 울리지 않는 평화로운 아침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저절로 눈이 떠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2. 평일 오전 조조영화 관람

벌써 몇 번 다녀왔는데, 아직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평일 오전에는 영화관에 사람이 정말 없다. 심지어 혼자서 본 적도 있다. 영화관을 전세 낸 것처럼 편안하게 혼자 영화 보는 기분도 꽤 괜찮다!


3. 평일 낮에만 가능한 런치메뉴를 먹을 수 있다.

약국에 근무할 때는 연차라는 것이 없기에 평일 낮에만 가능한 런치메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착한 가격에 좋은 구성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성비형 런치메뉴도 있지만, 간혹 아예 평일 런치에만 판매하는 메뉴도 있다. 그런 메뉴는 돈을 더 주고 먹고 싶어도 못 먹었는데, 퇴사 후에는 언제든 내가 먹고 싶을 때 가서 먹을 수 있다.


4. 소위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도 붐비지 않을 때 갈 수 있다.

예전에는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에 가려면, 주말은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없기에 주말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곳은 주말에 가면 '정말 코로나 시국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다. 퇴사 후에는 그런 곳에도 비교적 사람이 없는 평일 오전에 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다.


5. 비 오는 날 출근 걱정 없이 이불속에서 늑장을 부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짐을 하나 더 챙겨야 되는 번거로움 외에도, 높은 습도 때문에 기분이 눅눅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비 오는 날에는 약속도 잡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비 오는 날 출근은 어쩔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어서 비 오는 날도 조금 좋아지려고 한다.

  

6. 아침 시간이 여유롭다.

퇴사 전에는 출근 전에 여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기상을 했지만, 그래도 출근길은 항상 바쁘고 정신없었다. 요즘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으로 준비하는 시간, 출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필요 없기에 조금 늦게 일어나도 아침 시간이 여유롭다.


7. 온전히 혼자 누릴 수 있는 집

약간 집순이 기질이 있는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예전에는 주말에 두 분이 다 나가실 때나 가끔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요즘은 매일같이 조용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8. 평일 오전 사람 없는 도서관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집에서는 주로 저녁에 책을 읽지만,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날에는 일부러 오전 일찍 가서 조용한 공간에서 한참 책을 읽다가 온다. 반드시 읽어야 된다는 의무감이나 무엇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목적 없이, 그저 읽고 싶어서 읽는 책들로 내 시간을 채울 수 있다. 약국에 근무할 때는 틈틈이 책을 읽기는 하지만 손님이 오면 어쩔 수 없이 흐름이 끊겼는데, 요즘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9. 점심 식후에 즐기는 달콤한 낮잠 시간

약국은 점심시간에도 문을 닫지 않기 때문에 항상 대기 상태라 피곤해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요즘은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피할 때면, 점심 식후에 15분~20분 정도 소파에 기대어 낮잠을 잔다. 잠깐의 낮잠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10.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자유

약국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힘든 건 사실이다. 퇴사 후에는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가끔 보고 싶은 사람만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고 있다. 그래서 타인으로 인해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일이 없다.


11.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항상 있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휴대폰 메모장이나 노트에 기록하기는 했지만,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연결하고 다듬어 하나의 완성된 글로 만들어낼 시간이 부족했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요즘은 시간과 여유, 둘 다 충분하다. 하나의 루틴처럼 매일 오전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의 조각들을 의미 있는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어 기쁘다.


12. 매일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나는 햇빛 쬐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퇴사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면 해가 질 무렵에야 퇴근을 하기 때문에, 햇빛 구경도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겨우 주말에나 햇빛을 쬐며 걸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매일 점심 식후에 여유롭게 따뜻한 햇빛을 쬐며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동안 느꼈던 퇴사 후 좋은 점에 대해 적어보았다. 하나하나 적어보니 생각보다 많다. 직접 경험해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에, 퇴사하지 않았다면 혹은 퇴사 후 바로 취업을 했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 좋은걸 느끼지 못하는 삶이라니,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는 이런 사소한 순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복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행복이 뭐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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