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통풍약을 타러 오는 할아버지께서 여느 때처럼 웃으며 "이건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되는 거지?"라고 한마디 던지셨다. 늘 주고받는 말이라 나 역시 웃으며 대답하려던 찰나, 할아버지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더니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한 상황이었다.건강하고 지병도 없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듯했다.
그 친구분이 한 번 보자는 걸 코로나 때문에 다음에 보자고 미룬 사이에 일이 생겼고, 장례식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시국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신 것 같았다. 끝내 눈물을 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그때 못 본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친구에 대한 그리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된 감정이 느껴졌다.
이렇듯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 역시 매달 약을 타러 오던 분이 갑자기 안 오시면 덜컥 걱정이 된다. 어디가 아프신 건 아닌지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몇 달 후 약국에 찾아와 "아유, 내가 무릎이 안 좋아서 수술하고 딸네 집에 가있느라 그동안 못 왔어."라고 말하시면 그제야 한시름 놓는다.
하지만 정말 한참을 안 오셔서 걱정하던 중에 다른 분을 통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기분이 뭐랄까, 슬프기도 하지만 좀 허무하고 현실감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국에 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나와 대화도 하셨던 분인데,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우리는 종종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이를테면 피곤하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그런 핑계로 약속을 미룬다. 사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왜냐하면 꼭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 다시 약속만 하면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기처럼 계속 주어질 거라 믿는 '내일'이, '다음'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누구도 자신이 죽을 날을 알 수는 없기에 남은 시간 역시 예상할 수 없지만, 약국에서 본 할아버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냥 다음을 기약하며 약속을 미루기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연락해 안부도 묻고 가능하다면 만남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고 만남의 기회 역시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은 대부분 내일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 당장 나의 삶이 너무나 쉽게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때문이다.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시한부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다.
이 드라마에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췌장암 4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찬영이 나온다. 항암치료를 해도 생존율이 0.8%라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과감하게 치료를 포기한다.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은 인생을 정리하고 온전히 즐기고자 노력한다.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엄마에게 예쁜 생일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한다.
시한부의 삶을 다룬 드라마지만 슬픔과 후회로만 가득 찬 서사는 아니다. 담담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찬영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사실 드라마 속 이야기이지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죽음은 이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30대인 지금, 나 역시 죽음은 막연하게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드라마 속 인물에게 갑자기 찾아온 시한부 인생,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올 나이라서 더욱 감정이입을 하며 보게 된다. 그래서 매번 드라마를 보다가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올라오고, 코끝이 찡해지고, 결국은 엉엉 울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금방 웃기도 한다. 울다 웃다 그런 것이 우리의 인생 아닐까.
그리고 생각을 해본다. 만약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내가 아니더라도 만약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과연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고 밥을 먹으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찬영의 친구인 미조와 주희는 찬영이 '지구에서 제일 신나는 시한부'를 보낼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지만, 그들 역시 처음 겪는 일이라 서툴고 매번 흔들린다. 이따금 닥치는 현실 자각, 두려움, 슬픔을 완벽하게 지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고 해서 비탄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 삶이 무한히 지속된다면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다.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이해했다. 아름다움과 시간은 상호보완적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삶이 결국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살기는 힘들겠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인식한다면 좀 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해마다 즐기는 벚꽃과 단풍,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 가족들과의 식사.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일들조차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더 애틋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모든 순간을 힘껏 즐기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찬영은 지루하기만 했던 빨래방조차 재밌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이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하나씩 해 나가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사랑도 아낌없이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비장한 다짐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좀 더 집중하고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