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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철도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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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y 06. 2019

못생긴 여자

철도 - 4


철도 4 : 못생긴 여자


나는 내가 예쁜 여자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 삶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은 내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친절했고, 화이트 데이 같은 날에는 내 책상 위에 사탕 같은 것들이 한 움큼씩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가끔씩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에게 사탕을 가져다준 남자들에게 초콜릿으로 화답을 한다거나 내게 친절했던 친구들에게 다시 친절을 베풀어 주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게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계집애였다.



재민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이런 귀족 의식은 한층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연세대학교에 합격하자 사람들은 “공부도 잘하네.”라는 말을 하면서 한층 더 나를 치켜세워 주기 시작했다. 나는 겉으로는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조금은 잘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매우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재민과 나는 가끔 서울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가 광주로 내려갔다. 재민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자주 기차를 탈 형편이 아니었다. 또한 내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민이 서울에 올라오면 꼭 모텔을 잡아서 함께 밤을 보내야만 했다. 돈도 돈이지만, 모텔에는 꼭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난 지울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차라리 광주로 내려가 재민의 자취방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니 나의 부모님은 매주 KTX를 타고 광주로 내려갈 만한 돈을 내게 줄 경제력은 가지고 있었다.


재민의 조그마한 방에서 우리는 함께 밤을 먹었고, 섹스를 했고, 그냥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함께 유튜브 영상을 봤다. 재민이 내게 한 여자의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주었는데, 그녀는 화상을 입은 것인지 얼굴이 매우 뭉개지고 찌그러져 있었다. ‘저런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몹시 불행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그녀의 영상을 시청했다. 그녀는 매우 담담했고, 자신의 얼굴이 뭉개져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난 이렇게 화상을 입었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난 이렇게 화상을 입은 얼굴을 가졌어도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는 따위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지닌 불행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불행을 온몸으로 담담하게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담담한 그녀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예쁜 것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평생 동안 간직할 수 있다. 예쁘다는 것은 인간 감각에 자극을 주지만 아름다운 것은 인간 영혼을 적신다. 예쁨을 가진 사람은 그 예쁨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부드럽게 관조한다. 예쁨은 우연히 얻어질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결코 우연으로 얻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수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내해야만 획득할 수 있다.


영국의 한 철학자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그의 말은 옳다. 아름다움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행을 받아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는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미화시키지 않고서는 난 결코 삶이 내게 던지는 불행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영상 속 그녀처럼 화상을 입어 얼굴이 뭉개졌다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히 자살을 했을 것이다. 아니, 난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살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여느 장애인들처럼 순진무구하고 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착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저는 제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기준이 아닌 당신만의 예쁨을 위해 살아가세요.”


라고 말하면서 거짓 감동을 팔아댔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뭉개진 얼굴을 바라보며 그래도 자신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도 거짓말을 했고, 내게 박수를 쳐 준 사람들도 거짓말을 했다. 이게 인생이다. 어떻게 영상 속 그녀처럼 불행을 ‘그냥’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는 불가능한 소리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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