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철도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본재 May 20. 2019

장애인이 된 남자친구

철도-5


철도 5 : 장애인이 된 남자친구


“그런 역겨운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재민이 내게 말했다. 그는 지쳐있다. 그는 지쳐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지쳤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고, 재민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재민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중,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려오던 자동차에 짓밟힌 것이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남은 인생 내내 그 마비된 하반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끔 재민이 그때 죽었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재활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가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재민은 아직도 자기 스스로 똥, 오줌을 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재민은 아직도 자기 스스로 샤워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호사들이 마치 자동차를 닦듯이 자기 몸을 닦아줘야만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재민은 아직도… 그는 아직도 내가 알던 재민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역겨운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날 동정하지 마.” 



나는 못 들은 채 하고서는 병실을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몇 번 더 그가 내 신경을 건드리면 나는 소리를 지르거나 그의 뺨을 때려버릴 수도 있다. 그가 내 남자친구라고 해서 봐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또한 그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봐 줄 생각도 전혀 없다. 맞을 짓을 하면 애기이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노숙자이든 쳐 맞아야 한다.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신념이다. 


“헤어지자. 이런 모습을 너한테 더 보여주기 싫어. 이런 역겨운 내 모습, 너도 싫잖아? 게다가 나 이제 발기도 안돼. 알지? 섹스도 못 한다고. 그냥 다른 남자 만나고 네 인생에서 날 지워버려. 나도 그럴 거니까. 좆도 안 서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제발 그냥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줘.”


재민은 기어코 내 신경을 이렇게 건드리고 만다. 나는 손바닥을 펴고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거칠거칠한 그의 피부와 수염이 느껴졌다. 나는 4번 더 그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이번에는 거칠거칠한 그의 피부가 아니라 액체가 손에 묻어 나왔다. 재민은 울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해? 너가 힘들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노력하고 있어. 예전처럼, 너가 사고를 당하기 전처럼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거라고 믿으면서 이렇게 너를 보러 오는 거야. 나, 남자친구가 장애인이라고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뱉어낸 말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 있었을까? 내가 장애인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런 말을 지껄인 것일까? 꼭 TV에서 떠들어대는 <힐링 전문 스님> 같은 말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저는 장애인이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장애라는 불행이 제 인생에 찾아왔냐는 질문보다는, 그저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물으면서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내가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길 바라? 나는 매일 물어. 도대체 씨발, 왜 내가 장애인이 된 건지.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재민이 내게 소리쳤다.


“제 장애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해주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녀는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욕심은 하나도 없는 순수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저는 어쩌면 우울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랑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서 이딴 말이나 해주길 바라? 그래서 사람들이 동정 어린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봐주길 바라? 그래서 뭐, 그 사람들한테 돈이라도 받고 싶어?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불행을 팔아서 돈 벌고 싶냐고, 이 씨발년아!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야?” 재민은 씩씩 거리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정말 그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좋고 나쁨의 단상> 목차 보러 가기

웨딩해 구경하러 가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콘텐츠 보러 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