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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철도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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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03. 2019

섹스 없는 사랑

철도-6


철도 6 : 섹스 없는 사랑


나는 교회의 예배당에 앉아있다. 아마 10년 만에 이 곳에 온 것 같다. 내 앞으로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뭘 해야 하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로 한다. 


“여러분께 주어지는 모든 시련에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께서는 절대로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믿으면 다 같이 ‘아멘’이라고 외쳐볼까요?”


“아멘!”


솔직히 조금 졸고 있었던 나는 “아멘!”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사님은 다시 한번 “믿으면 아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번에는 나도 조그맣게 “아멘!”이라고 외쳐본다. 조금 힘이 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나는 이제 한계에 와있다.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재민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고, 인생을 포기한 것 같았다. 발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더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밤에 옆에 있는 나의 손을 붙잡고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를 만져보고 싶어.” 그럴 때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가 내 가슴을 만지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병실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 혹시나 알아챌까 걱정되었지만, 그들 모두 다른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는 삶을 살아온 지 오래였다.


그는 몇 번 내 가슴을 만지더니 이내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네 가슴이 참 좋은데 나는 이제 발기도 안돼…”라고 말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댔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교회에 앉아서 나는 재민과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 그 신에 대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재민의 페니스는 다시 발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자가 아닌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신께서 재민의 고추를 잠시 동안 얼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재민은 다시 걸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두 발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신의 뜻으로 그는 잠깐 장애인이 된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고 결국 주님은 우리를 선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나는 갑자기 삶이 살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밝은 햇살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렇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예배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갔을 때 재민은 죽어있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영수 제과에 들러서 양갱과 누네띠네를 한 움큼 들고 병실로 돌아가던 터였다. 재민의 몸이 땅 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두개골은 박살난 것 같았고 몸의 파편들이 여기저기로 퍼져있었다. 


“저 청년 병원에서 뛰어내렸다는데… 아마 바닥에 몸이 박히기 전에 죽었을 거야. 고통이 크지는 않았을 거라고.” 



재민의 시체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중 한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 앞에서 시체를 보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 같았다. 


걷게 될 수 없게 된 이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일까. 신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일까. 깊은 생각 끝에, 나는 내가 장애인이 된 것은 단순히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제 발기도 할 수 없다. 여자친구는 정말 헌신적으로 나를 돌보아준다. 그녀의 사랑에 감사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그녀가 곧 나를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지쳤을 것이고 분명히 누군가와 육체적 교감을 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걸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나 역시 지금 그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섹스 없는 사랑은 지옥이다. 

부모님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당신들의 아들이…


재민은 이런 글을 남기고 창 밖으로 몸을 던져버린 것 같다. 그때 나는 슬펐던 것 같다. 분명히 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그가 죽어버렸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으며 내가 그를 먼저 떠나기 전에, 그가 먼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이 내심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끝났다. 다행이 내가 썅년이 되지는 않았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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