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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철도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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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17. 2019

나는 사랑을 찾아가겠습니다

철도-Epilogue


철도 Epilogue : 나는 사랑을 찾아가겠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인생만큼은 내가 원할 때 끝내겠다.’ 제 이야기를 듣는 분들 중 일부는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 사람, 상당히 니체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군.”


네, 니체는 분명히 자살을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삶의 대미를 장식하는 축제로서 자살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살만큼 다 살았고 후회가 없다, 그래서 난 여기서 내 인생을 끝내겠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게 생각한 것이죠. 저는 니체와는 다릅니다. 저는 지쳤습니다. 살만큼 다 살지도 않았고, 뒤돌아보면 모든 것들이 후회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잠을 잘 때만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악몽을 꿔본 적이 없습니다. 눈을 떴을 때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만 악몽이 시작됩니다. 



이제 기차는 무안을 지나갑니다. 목포역, 철도의 끝까지는 채 20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제 이야기를 하나의 거짓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었습니다. 제게는 3시간밖에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재민이 죽고 난 후, 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씨발, 나도 할 만큼 했다. 나는 나이도 어리고 앞으로 남자를 만날 기회가 널려있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재민이가 죽기 전에도, 장애인이 되어 병실에 있을 때도 난 최선을 다했다.’ 


저는 몇 명의 남자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룹섹스, 사람들이 ‘갱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거쳐갔던 한 남자는 제가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네가 다른 남자랑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저는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남자친구의 제안에 응했습니다. 그 남자친구는 섹스가 영 신통치 않았고,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 곧바로 섹스를 한다는 것도 조금은 저를 흥분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번의 섹스가 끝나면, 남자들과의 관계도 함께 끝나버렸습니다. 네, 그것 때문에 몇 번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제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너무 진지했습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믿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재민 때문입니다. 그가 내게 했던 고백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나누었던 추억들 때문입니다. 그와 서툴게 했던 그 섹스들 때문입니다. 재민과의 시간들 때문에 저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마법 같은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은 인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재민이 죽고, 새로운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사랑을 기대했으니까요.


네, 어떤 것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야만 분명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재민이 죽은 지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자들은 사랑을 하지 않아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심지어 사랑을 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속이면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왜 이렇게 늦게 알아버렸을까요? 뭐,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질문입니다. 네, 사랑이 불가능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목포역에서 내려, 제10대를 보냈던 장소들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항상 목포를 싫어했고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네, 인정합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때의 나를 추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민과 함께 했던 그 장소들을 한 번 추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우습죠? 네, 저를 비웃으셔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충분히 추억한 후, 저는 목포대교 밑으로 몸을 던질 것입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서 허우적거릴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평생을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저니까요.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저는 다시 눈을 뜰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네, 그곳에는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행복할 것이고, 처음으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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