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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철도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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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08. 2019

나는 서울로, 그는 광주로 떠났다.

철도 - 2


철도 2 : 나는 서울로, 그는 광주로 떠났다.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은 영어를 못한다. 그가 영어 지문을 읽을 때면 학생들은 낄낄 거리며 그의 영어 발음을 흉내 내곤 했다. 교권은 사라진 지 오래, 그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목포에서 소위 ‘꼴통’들만 진학하는 곳으로, <애미 없는 놈>이라는 표현만이 그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애미 없는 놈들> 중 한 명이 영어 선생님의 뺨을 갈겨버렸다. 선생님이 그에게 수업 시간에는 휴대폰을 꺼내지 말라고 말한 것이 그 이유였다. 


학생이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것은 요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놀란 것은 뺨을 맞은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늙다리 영어 선생님은 건장한 고등학생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어디 학생이 선생님한테!”라는 말은 그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영어 선생님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렇게 처량한 모습을 몇 분간 유지한 후 교실을 나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영어 선생님이 우는 모습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영어 선생, 진짜 기집애 같은 새끼 아니냐?”


<애미 없는 놈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하며 실없이 히죽거렸다. 이런 꼴통들이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내게 축복과도 같았다. 나는 그들 덕분에 문과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아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입시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나의 생활기록부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고 3인 지금까지 총 2과목만 2등급을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1등급이었다. 이 성적이라면 서울 최상위권 대학에 ‘내신 전형’으로 지원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도 있었다. 나에게 있어 <애미 없는 놈들>은 참으로 쓸모 있는 바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시시한 일들 – 선생님의 뺨을 때린다거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남자들끼리의 싸움 끝에 한 명이 장애인이 되었다거나 하는 시시한 일들 – 에는 그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공부에만 매진했다. 쓰레기통과 다름없는 목포를 떠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 삶에 커다란 변화 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창업을 하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될 거라는 기대, 예술을 하면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될 거라는 기대가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 어떤 커다란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창업을 하면 처음에도 힘들고 나중에도 힘들다. 예술을 하면 처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나중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그것이 삶의 진실이었다.


수능이 끝났고 각자 가야 할 대학교가 정해졌다. 나의 내신성적은 그 어떠한 커다란 변화도 없이 매우 높은 점수를 유지했고, 나는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제민은 전남대학교에 합격했고 그 역시 우리가 다니고 있는 이 꼴통 고등학교에서는 괄목할 만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다만 그가 전라남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내가 전라남도에 19년 동안 살아본 결과, 그곳은 음식이 맛있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형편없는 곳이었다. 



제민과 나의 인연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끝나버릴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니 나는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리는 분명 약간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고받는 연락은 뜸해질 것이고, 마침내 우리는 서로 원래 모르는 사이였던 것처럼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굳이 마음 아파하지는 말자, 본래 인간관계라는 건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이며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없이 10대의 마지막 나날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 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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