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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30. 2019

남들 다 하는 그것, 왜 나만 못해?

결혼에 관한 자잘하지만 거대한 고민들


카톡-! 카카카카, 카톡-!

평소 잘 울리지 않는 내 핸드폰이 오랜만에 연이은 카톡 알림으로 시끄럽게 울어댄다. 침대에서 뒹굴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있던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영화를 정지시키고 책상 위에 있던 폰을 집어 들었다. 내 폰이 마치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카카카카, 카톡-!’을 외치도록 만든 장본인은 오랜만에 연락 온, 힘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였다. 가끔 연락하고 1년에 한두 번 보면 많이 본다고 할 정도로 각자의 사회생활로 바쁜 우리였기에 오랜만에 흥분하며 카톡을 보낸 친구의 모습에 적잖이 흥미가 생겼다. 사실 20대 후반인 우리 나이쯤 되면 많은 일들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사실이니까.


앞선 많은 이야기들을 각설하고 이제나마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친구가 급작스럽게 연락을 해온 것은 <현타 온 인생>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때문이었다. 물론 <현타 온 인생>이라는 주된 고민 안에는 연애, 결혼, 직장, 인간관계 등 다양한 고민들이 섞여있다. 중학교 때부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해준다는 이유로 주변 친구들로부터 심리상담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곧잘 들어왔기에 이제는 친구들의 고민 상담은 내게는 어려운 일이 아닌, 일상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오랜만에 급한 카톡으로 연락 온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나 또한 친구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인 바, 열심히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친구의 첫 번째 고민은 직장 문제였다. 한 마디로 <일하지 않고 살고 싶은데 재취업을 하자니 앞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고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고민이자 살아가는 동안에는 벼락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소망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뭐 그렇다고 매주 연금복권이나 로또를 열심히 사거나 <영 앤 핸섬 앤 리치>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첫 번째 고민은 ‘그럼에도 아침에 1시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조금씩 시작해본다던지 혼자 조조영화라도 보면서 삶에 동기를 불어넣어봐.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지’라는 진부한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고민이자 두 번째 고민은 연애와 결혼 문제였다. 연애에 큰 관심이 없던 친구는 올해 20대의 끝자락을 맞이한 주변 여자친구들이 서둘러 결혼을 물에 밥 말아먹듯 후루룩 해치워버리는 것을 보고 현타가 왔다고 한다. 계절 바뀌면 함께 여행 가고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면 맛있는 것을 먹으러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이제는 유부녀가 되어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집에 혼자 있을 남편 걱정을 하고 주말에 약속이라도 잡으려거든 남편에게 이야기해봐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2, 3년 후의 혼자될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불안감이 훅 밀려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심도 없던 연애에 궁금증 수준을 넘어 어서 빨리 연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으로까지 번졌다고 하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고를 나온 나는 지금 친구가 느끼는 감정을 대학교 때 이미 한 차례 겪었다. 고등학교 때 조금씩 잔돈을 모아 떡볶이 사 먹으며 몰려다니고 친하게 지냈던 우리가 각기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쉽게 만나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각자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다 같이 만날 약속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어려 이 친구들이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새로운 인연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또 지금 연애를 못 한다고 해도 곧 다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당연한 듯 들었고 소개팅이나 미팅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러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는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설상가상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듯이 연애와 결혼 또한 정해진 순리대로 척척 해나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남들 다 하는 그것을 왜 나만 제대로 못 해내고 이러고 있는 건가 싶은 자괴감까지 들게 된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는 그 순간, 혼자 있는 방이 적막하게 느껴졌을 때 BGM처럼 틀어놓는 라디오에서 거북이의 <빙고>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는 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정말 우연하게 듣게 된 노래였지만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내가 이러쿵저러쿵, 같잖고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뻔한 위로를 늘어놓는 것보다 저 노래 가사 한 줄을 친구에게 들려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가면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리는 것 같고 평탄한 것만 같지만 조금 더 멀리 가서 뒤를 돌아보면 내 인생도 재미있게 살았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연애, 결혼 그까짓 것 좀 못 하면 어떤가? 그것 안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널렸다. 요즘 책이며 강연이며 어딜 가나 다 ‘괜찮다’라는 말만 늘어놓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오히려 난 ‘괜찮다’라는 말이 하기 꺼려진다. 하지만 연애, 결혼을 못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하고 싶다. 


남들 다 하는 그것, 나까지 굳이 안 해도 괜찮아!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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