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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13. 2020

여보, 친구 좀 그만 만나고
브이로그도 그만 좀 봐

꿈도 좋지만 현실이 더 급해!


원형 탈모가 시작되었고 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 자신을 버린 지 오래입니다. 결혼도 했는데, 외모에 신경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아내는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머리도 없고, 배가 나온 이 아저씨를 도대체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결혼을 하고 깨달은 건 허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총각 시절에 허세를 꽤나 많이 부렸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별 거짓말을 다 했죠. 주식으로 돈을 좀 벌었다, 사실 부모님이 장만해주신 아파트가 있다, 아는 형이 있는데 같이 사업을 하자더라… 뭐 이런 뻔한 말들 있지 않습니까. 친구들은 이런 제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자기 인생을 더 과장해서 저보다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 전 친구가 없습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벌렁벌렁 합니다. 아이도 가져야 하고, 교육도 시켜야 하는데… 빚이 있고 월급은 빚을 갚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에게 더 이상 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 그 사람들에게 절대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만나고 돌아오면 불편한 마음만 생기겠죠. 전 또다시 그 사람들 앞에서 제 삶을 과장할 테고 그들도 그럴 거니까요. 혼자가 좋습니다. 



문제는 아내와 제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그녀는 아직도 꿈속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미안합니다. 돈이 많지 않아서 명품 가방 한 번 사준 적 없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이 없는 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해도 돈이 없는 걸. 아내는 친구들을 종종 만납니다. 저는 ‘자주’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 아내는 ‘종종’이라고 말하라면서 제게 화를 내더군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2번씩 만나는데 그게 ‘종종’인가요? 아내가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아내의 뜻을 따라서 저도 ‘종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항상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집에 돌아옵니다. 친구들이 별의별 자랑을 다 하나 봅니다. 한 친구는 여행을 간다고, 한 친구는 어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또 다른 친구는 집이 넓어서 청소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고…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런 친구들의 자랑 때문에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오면 저한테 짜증 비슷한 것을 냅니다. 혹시 마누라의 짜증을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정말 목매달아 죽고 싶습니다. 그냥 창문 깨고 베란다 밖으로 떨어지고 싶단 말이죠. 그놈의 여행이랑 어학… 여자들은 그거 못하면 죽나요? 


가장으로서 제 권위는 이제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돈은 저만 벌어오는데도 말이죠. 아이도 없다 보니 아내는 심심해서 친구를 많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어떻냐고 물어봤지만 대답만 건성으로 하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만 보고 있습니다. 영상도 브이로그라는 건데, 저도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자기 인생 자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걸 보면서 아내는 또 한숨을 푹푹 내쉽니다. 아니,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거면 애초에 안 보면 되는 것을, 도대체 대가리에 뭐가 든 걸까요?



결혼은 축복입니다.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것이죠. 저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빚은 있지만 못 갚을 정도는 아니고, 빡세게 일해서 갚아 나가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내와 저는 한 몸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저만 열심히 한다고 되겠습니까.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여보, 편의점에라도 취직을 해서 같이 돈 벌어보자. 저축하고 그러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거고, 그러면 그놈의 어학이랑 여행도 맘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도대체 어학이랑 여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브이로그에 나오는 여자들이 한다고 하니까 당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지, 뭐. 좋다 이거야. 그런데 일단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꿈을 이루면 안 될까? 난 다 준비됐어. 알잖아, 나 옷 한 벌 안 사는 거. 나 그런 거 괜찮다니까? 빨리 빚을 갚고 가족을 만들자고. 알겠지? 


도대체 유튜브가 없었던 시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렇게 다 자기 인생 자랑하고 싶어서 난리인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내는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큰 꿈을 꾸는 건가요? 하지만 결혼은 나 자신을 좀 더 내려놓는 과정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로지 ‘아내’로만 존재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내’로서의 역할은 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결혼을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인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 후에도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면 떨어지려고 합니다. 떨어질 곳도 잘 알아봐 놓았습니다. 그때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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