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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22. 2020

엄마의 비밀

배우자가 싫어도 이혼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삶을 살다 보면 반드시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발생한단다. 기억하렴, 난 ‘반드시’라고 말했다. 너도 예외가 아니란 소리다. 넌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너의 인생을 망쳐버릴 거야. 넌 죽기를 바라며 지옥을 살아갈 거야.” 


2020년 4월 17일 오후 4시 34분. 내게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엄마가 어떤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마로니에 공원이었다. 난 본능적으로 아이폰을 들고 그녀와 그녀 옆에 있는 남자를 찍기 시작했다. 내 엄지 손가락이 휴대폰 터치 스크린에게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엄마도 저 남자에게 이렇게 키스를 퍼부을까? 


난 단번에 저 남자가 그냥 ‘동료’는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동료끼리 팔짱을 끼지는 않으니까. 서로 뒤엉켜 있는 팔을 보고 있자니 그들은 곧 더한 것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촌구석에서 10년 정도 벼농사를 지은 것 같은 장딴지가 훤히 보였다. 난 점심에 먹었던 맥도날드 햄버거가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의 장딴지는 역겹다. 


‘뭐 하는 거야? 맨살을 보여줘서 뭘 하게? 나이 50 넘어서? 그 나이에도 성욕이 있는 거야?’ 


난 이렇게 생각하면서 엄마와 그녀 옆에 있는 남자를 몰래 지켜보았다. 그들은 유유히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다. 난 따라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동생 만들어지는 건 싫으니까 콘돔은 꼭 써라.’ 


난 남자에게 이렇게 텔레파시를 보내고 내 갈 길을 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자가 불륜을 저지르면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중동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즉, 옛날이었으면 엄마는 돌에 쳐 맞아 죽었다. 난 그렇게 ‘애미 없는 자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예수가 죄 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이 단단한 전통에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난 ‘애미 없는 자식’이라는 욕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아빠와 둘이서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가 해주는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으면 난 40대가 되어 암에 걸릴 거고 50대가 되면 사망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엄마가 해준 건강한 음식이 내 앞에 있다. 엄마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어젯밤에 그 남자와 즐거웠나 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는 엄마에게 “새우볶음 진짜 맛있네. 더 있어?”라고 순수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많지. 마음껏 먹어, 여보.”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아빠 접시에 새우볶음을 한 움큼 올려놓는다. “요즘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내가 뭐 잘못했어?” 아빠는 기분 좋은 표정을 하며 이렇게 엄마에게 물어보고, 엄마는 “항상 잘했지!”라고 애교 있는 목소리로 답한다. 


아! 얼마나 단란한 잉꼬부부인가. 행복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엄마의 외도를 통해 달성할 수 있었다. 난 행복해하는 부모님을 보며 어제 본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휴대폰에 있는 사진도 모조리 지워버리자고,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리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빠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는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낫다. 그렇게 난 엄마의 외도를 감추기로 했다. 



우리 가족의 단란한 행복은 2020년 5월 15일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 통의 전화였다. 그 날 오후 6시 정도에 걸려온 전화를 내가 받았는데, 떨리는 목소리의 한 아줌마가 “너네 엄마 좀 바꿔.”라며 싸가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없는데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끊으려 했는데, 이 아줌마는 갑자기 내게 “너 그거 아니?”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 아줌마가 엄마가 바람피운 남편의 아내일 거라는 직감이 밀려들어 왔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이 1초 만에 삶의 파노라마를 보듯, 나 역시 이 아줌마의 말을 듣자마자 한 달 전 마로니에 공원에서 보았던 엄마의 모습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네 엄마가 내 남편 빼앗아 간 거 아니? 나 지금 너네 집 앞이야.” 


아줌마는 전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는데 마치 살인 예고처럼 들렸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내려놓고 문이 굳게 잠겼는지 확인한 후, 베란다로 나가 아줌마가 정말 집 앞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정말 있었다. 


하얀색 소나타가 아파트 단지 앞에 있었고 그 앞에 어떤 아줌마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꼭 칼처럼 보였다. 아마 미국이었다면 저 아줌마는 총을 가져와서 우리 가족을 다 쏴 버렸을 것이다. 아줌마와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다시 방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내 취미는 한국 사람들이 전혀 모를 것 같은 유튜브 채널에 댓글을 다는 것이다. 그러면 며칠 후 한국 사람이 “와, 여기서 한국 사람을 볼 줄이야. 음악 취향 좋으신데요?” 하는 식으로 내게 댓글을 단다. 그런 댓글을 받을 때마다 난 내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한국인들 중 극소수만 향유하는 예술을 내가 즐기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유튜브 세계에서 댓글을 달고 있는 사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난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서 밖을 보았고 엄마와 아줌마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람한 장딴지를 가지고 있는 엄마가 아줌마를 땅에 자빠뜨려 버렸고 아줌마는 총에 맞은 야생 동물 마냥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말리기는커녕 다들 아이폰으로 엄마와 아줌마가 싸우는 장면을 찍고만 있었다. 오늘 내로 유튜브에 올라가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엄마가 이겼다.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그리고 그냥 맞짱을 뜨는 것도.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5월 20일 그들은 냉전 상태이긴 하지만 이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나로서는 엄마와 아빠 모두가 불쌍하다. 엄마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다. 나 때문일까? 자식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릴 정도의 뻔뻔함은 엄마에게는 없는 걸까? 나라면 고민 끝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갔을 텐데. 난 엄마가 자주 짜증을 내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겠다. 마음속에 응어리 진 여자가 어떻게 짜증을 안 낼 수 있단 말인가? 난 엄마가 호스트 바에 가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겠다. 그게 아니고서야 엄마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빠도 불쌍하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살아야 한다. 왜 아빠는 이혼하지 않는 걸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 집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플라톤은 인간이 원래 남녀가 등을 맞댄 채 하나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딱 맞는 짝과 태어날 때부터 하나인 채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의 힘 때문에 너무 강해진 인간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신이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후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졌고, 삶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소울 메이트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소울 메이트를 찾지 못하고 엄한 사람과 결혼한다. 


모든 불행은 곧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사랑하면서 시작된다. 어떻게 내 소울 메이트를 찾을 것인가?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꺼져버린 사랑을 짊어지고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난 엄마 아빠를 보면서 지금 그걸 배워나가고 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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