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목적성을 가지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매년 봄만 되면 골치가 아파. 도대체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서로 부담스럽지도 않고 서운하지도 않은 건지 가늠이 안돼. 결혼식 참석만 5년 차인데 아직도 축의금이 제일 어렵다.”
올해는 무시무시한 ‘그’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결혼식이 연기되거나 가족 간의 행사 정도로 규모가 축소되면서 ‘결혼식 참석’이라는 연례행사가 조용하게 지나가는 듯하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닭똥 같은 눈물과 함께 아쉬움과 서운함이 몰려들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도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어찌할 도리가 없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매년 봄만 되면 한껏 꾸민 들러리가 되어 남의 결혼식에서 봉투 받아주고 광대에 경련이 날 정도로 활짝 웃은 채 수십 번씩 사진을 찍어준다. 더불어 축의금을 얼마까지 해야 적당한 선에서 예의도 지키고 실리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노라면 자연히 머리가 지끈거린다-축하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골머리를 앓는 것은 비단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도 어느 범위의 지인에게까지 청첩장을 돌려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들 주변으로 살벌한 눈치 게임의 아우라가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주변의 한 친구는 최대한 대출 금액을 줄여 집을 얻을 수 있을 때를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남자 친구와 사이도 좋고 서로의 분야에서 한창 잘 나가는 때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2~3년 후에 결혼하기로 잠정적으로 약속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결혼 청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웨딩의 형태와 규모 그리고 청첩장 문제는 낚싯줄에 매달린 물고기처럼 자연스레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친척들은 어차피 부모님 통해서 대부분 전달될 거고, 직장 동료들은 매일 보는 사이니까 오히려 가볍게 청첩장 돌릴 수 있는데… 친구나 지인들은 어느 범위까지 청첩장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어. 사실 나는 되게 오랫동안 연락 안 된 친구들도 청첩장 주겠다고 연락 오면 거절 못해서 받고 축의금도 5만 원 이상 꼬박꼬박 했단 말이지? 근데 막상 내 결혼식에 초대하려고 하니까 좀 그래. 걔네 결혼식 끝나고 다시 연락 오지도 않은 걸로 봐선, 걘 나 호구로 본 건데 나만 ‘그래도’ 친구라고 생각하고 바보 같이 결혼식 가서 부조까지 한 건가 후회도 되고…”
“결혼식 참석해서 축의금까지 했으면 너 할 도리 다 한 건데 눈치 볼 필요 있어? 그것도 5만 원 이상 꼬박꼬박 했다며? 그냥 너도 얼굴에 철판 깔고 청첩장 보내. 나 아는 언니는 이번에 결혼하는데 그동안 엑셀 파일에 누구한테 언제, 얼마씩 부조했는지 싹 다 정리해서 가지고 있대. 내가 준 돈 내가 회수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정 그렇다면 일단 청첩장은 보내봐. 그럼 그쪽에서도 무슨 반응이 있겠지. 밑져야 본전이야. 참석 안 하면 5만 원에 사람 걸렀다 생각하고 손절하면 되고, 참석하면 내가 한 만큼 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듣고 보니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부조라는 것이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힘이 되어주고 보탬이 되어주기 위함이다. 내가 도움을 줬던 일이 있으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어야 공평하고 또 그 취지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청첩장을 보내는 것도 내 권리를 주장하는 하나의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착한 척 DNA가 발동하려는 탓인지, ‘일단 청첩장 보낸 후 받을 거 받고 아니면 손절’이라는 말은 좀 씁쓸하게 느껴졌다. 축하받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줄 사람을 초대한다는 의미보다는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전면에 내세워지는 것만 같아서 왠지 찜찜한 것이다. 아, 이 놈의 빌어먹을 착한 척… 이럴 때는 조금 더 네 가지 없이 나만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막 나가도 될 것 같지만, 적어도 뒷말은 안 나오게 살자는 인생 모토가 이럴 때마다 행동에 제약을 건다.
한창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꼈을 때 ‘이 세상에 목적 없이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각자가 가진 목적을 바탕으로 하는 모종의 관계성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서로 남남인 사람들 사이에 상대방에게 들이댈 목적과 잣대 하나 없다는 것도 한편으론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앞두고 하객으로 초대할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들 사이에서의 나의 평판을 탄탄하게 다져 놓는 사람들의 모습과 결혼식 이후에 실질적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에 여전히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편으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가상의 결혼식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누구를 초대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말이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