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그러하듯, 기억되기보다는 향수되길
언뜻 ‘기억’과 ‘향수’라는 단어를 들으면 비슷한 의미를 떠올리겠지만, 둘은 분명 다른 단어다. 사전에서 두 단어를 찾아보면 ‘기억하다’는 ‘이전의 인상이나 기억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향수하다’는 ‘어떤 혜택을 받아 누리다’ 또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감동 따위를 음미하고 즐기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전적 의미와 단어 자체가 주는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내게 지나간 사랑과 사람은 기억이나 추억처럼 단순히 마음속에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상이 아니다. 아름다웠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돌이켜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곱씹게 하는 ‘향수’의 대상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 지나간 사람과 사랑 그리고 그날을 향수한다.
전혀 알지 못하던 가수의 노래를 함께 듣고 그 가수의 모든 앨범을 찾아 듣게 되었을 때, 동경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하고 그 책을 며칠 동안 아껴가며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음식과 영화 장르가 같아 밥을 먹을 때나 영화를 예매하며 다툴 일이 없을 때, 우리는 상대를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다가오는 행복감을 잊을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길거리에 있는 옷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당신을 떠올린다. 함께 수다 떨던 카페에 가면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당신이 마시던 그 커피를 주문한다. 자주 산책하던 공원에서 말없이 앉아 바라보던 전경을 앞에 두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던 그때의 당신의 옆모습을 그린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취향의 문제로 결부된다. 평생 서로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었을 두 사람이 만나 하나씩 공통점을 발견해나가는 것은 그 어떤 보물 찾기보다도 몰입하게 되는 즐겁고 경이로우며 아름다운 게임이다. 몰랐던 서로의 취향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때론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당신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은 취향을 강권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엔 서로 좁혀질 수 없는 차이를 ‘취향 존중’이라는 말로 덮어두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는 어쨌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인정, 존중이 기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연애의 끝은 상대를 더 이상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에게 톰이 “세상에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라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네고 그녀의 관심사와는 관계없이 썸머의 루프탑 파티에 <<행복한 건축>>이라는 책을 선물로 가져갔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별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더 이상 나와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만도 꽤 높은 비율로 이별의 원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지나갔고 그 사람도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곁엔 아직 곱씹고 되돌아볼 추억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함께 향수했던 수많은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우리의 마음이 삭막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내 귀에 들려오는 이 노래가, 지금 보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 공기가, 당신이 두고 간 선물처럼 남아있기 때문 아닐까?
모든 끝이 다 아름답고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면, 지나간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단순히 스쳐간 한 명의 ‘누구’로 기억되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나마 아름다운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으로서 ‘향수’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