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 감정 놀음
“지금 카드랑 은행 입출금도 일시적으로 다 막혔는데 주말이라 해결이 안 되네. 월요일에 은행 문 열자마자 해결하고 바로 돈 보내줄 테니까 하루만 돈 좀 빌려주면 안 될까?”
진짜 가족, 친구, 연인, 동료의 애절하고도 진심 어린 부탁일까, 아니면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자들이 짜 놓은 판에 예상치 못하게 초대된 걸까?
언젠가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거래 은행, 통신사, 공적 기관으로부터 '공공기관과 기업에서는 비밀번호와 보안카드 전체 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이스 피싱에 유의하시고 확인되지 않은 링크는 클릭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받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 또한 “검찰청입니다. XXX 씨 앞으로 현재 금융 사기 관련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소환장을 자택으로 발송하였으니 검찰에 출두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두려움에 떨며 112에 전화했던 적이 있었으니, 하물며 주의력이나 사고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이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사기’다. 게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주변에 알리면 9할 이상의 사람들은 “너도 참 바보 같다. 내 주변에 진짜로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딱 봐도 사기꾼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아?”라고 말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질타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도 어디에 가서 제대로 하소연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피해가 더 커지는 경우도 꽤 있다.
금융 사기, 중고거래 사기처럼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한데, ‘사랑’을 매개로 한 사기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었다는 둥, 남자 혹은 여자에게 빠져서 간이고 쓸개고 다 퍼주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는 둥 더 가혹한 말들로 피해자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도 혼인빙자 사기가 엄연한 죄목으로 존재했을 만큼 연애와 결혼을 매개로 한 사기가 많았다. 이는 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한 가족에게까지 막대한 금전적 피해와 정신적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이러한 사기는 매번 일일이 기록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인류 역사상 꽤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몇 다리만 건너면 “누구네 집 자식이~”하는 식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런 사기들이 국내 위주로 발생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한 국경 없는 연애가 가능해지면서 국제적 로맨스 스캠으로 번지고 있는 듯하다. 오죽하면 공중파 방송국에서 로맨스 스캠에 대한 탐사 보도를 방영하겠는가.
보이스 피싱 자체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중에서도 로맨스 스캠은 사람의 ‘감정’을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악질이다.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싶은 마음 혹은 사랑하는 연인의 어려움을 알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마음씨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도 사회 전반에 의심의 트라우마를 퍼뜨리는 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친구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소액이라도 금전적인 도움을 줬다고 하면, 내가 비록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더라도 “조심해. 너 그렇게 조금씩 빌려달라, 빌려달라 해서 빌려주다 보면 큰 금액 되어 있고, 그러다가 안 갚으면 고대로 털리는 거야. 그게 바로 로맨스 스캠인 거야.”라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겠는가.
불신의 시대다. 불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기에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또 얼마 간의 불신은 정말로 악한 마음을 먹고 달려드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세상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기에 순진한 사람이 살아남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고귀한 감정의 성역을 건드려 사기를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시덕거리며 거짓 놀음을 하는 이들에게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가 외쳤던 것처럼 꼭 소리쳐주고 싶다.
“사기는 돌아오는 거야!”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