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보다는 연애 전문가들의 말을 믿자.
남자 친구는 축구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 얼굴에 싸커 킥을 갈겼을 때 저는 아픔을 느끼기보다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렇게 발을 잘 휘두르는 사람이 왜 축구는 못 할까요? 축구는 정말 어려운 운동인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뭐, 저랑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월드컵도 보지 않으니까요.
“그 어떤 것도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비정상이라는 말은 사회가 만들어낸 억압이에요.”
상담사는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비정상일까요? 물론 저는 멍청하고, 상담사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학력 앞에서 저는 작아져 버립니다. 제가 뭘 아나요? 똑똑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믿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정상이라는 건가요?”
내 말에 상담사는 ‘멍청한 인간과 대화하는 건 참 힘들구나…’라는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그리고서는 ‘하…’ 하는 헛웃음과 함께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돈을 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나를 상종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본주의는 참 좋은 거네요. 나 같은 하층계급도 돈만 있으면 상층계급과 말을 섞을 수 있으니까요. 모든 걸 신분으로 해결하는 세상보다는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는 세상이 더 좋습니다.
“정상, 비정상이라는 구분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예전에는 동성애도 비정상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봐요. 누가 동성애를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만 정상, 비정상은 사회가 만들어낸 억압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내담자님도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존감을 가지세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담자님의 자존감이 회복되어야 해요.”
“네.”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상담사는 시계를 보더니 “그럼 다음 주에는 함께 자존감을 회복해보도록 하죠.”라고 말하며 나를 내보냅니다. 그녀에게 있어 시간은 항상 부족한 재화입니다. 나에게 있어 시간은 항상 남는 재화입니다. 이게 뭘 말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말해줍니다.
“미안해.” 남자 친구는 사과를 합니다. 하지만 사과를 한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연쇄 살인마도 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연쇄 살인마는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살인을 한 후 저는 계속 미안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미안해라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고 세 번째 살인도 저질렀습니다. 인간은 미안해라고 말하면서도 살인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래를 한 번 예측해볼까요? 그는 분명히 제게 다시 싸커 킥을 날릴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미안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그를 용서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대답하겠죠. 니체는 영원 회귀를 말했습니다. 저처럼 어리석은 인간은 니체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니체가 꼭 제 인생을 두고 영원 회귀라는 말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인생은 남자 친구에게 맞고 그를 용서하고 다시 맞는 과정의 무한한 반복입니다.
여러분들은 제게 뭐라고 하실 건가요? 감히 제게 비정상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정상, 비정상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니까요. 제가 바뀌어야 할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명한 연애 전문가들께서는 다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고 말하십니다. 그러니까 저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는데 왜 제가 바뀌어야 하죠?
물론 저는 바뀌고 싶습니다. 제 머리가 축구공이 되어버린 지금의 삶은 좀 지긋지긋하네요. 하지만 저는 멍청하고 TV에 나오는 연애 전문가분들은 똑똑하니 저는 그냥 그분들의 말씀을 따르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보려고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할 때 타인의 말을 따르나요,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시나요? 저는 이 말 저 말에 휘둘립니다. TV에 나온 연애 전문가, 연애 전문 유튜버, 신문에 글을 쓰는 연애 전문가들의 주장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저는 그분들의 말을 들으며 “공감, 공감.” 하는 댓글을 씁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주장에도 공감을 외치는 댓글을 보면 '내가 틀렸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닌가요? 여러분은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가요? 여러분들은 ‘인플루언서’에 휘둘리지 않는 분들이신가요? 아, 그렇군요.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 시군요. 인터넷 댓글로 싸우지도 않고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판단을 내리시는 분들이군요. 그럼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저는 이렇게 계속 남자 친구에게 맞으면서 살아야 하나요? 부디 답변해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사랑’이라는 주제에 전문가가 존재할 수 있나요?
부디 누군가 한 분이라도 대답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꼭이요.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