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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r 15. 2021

연인이 친구에게 내 험담을 했다

따지면 헤어질 것 같고, 그냥 두기엔 찝찝한 딜레마에 빠지다


일부러 집에 TV를 두고 살지 않는 내가 방송국 웹사이트의 ‘On Air’를 이용해서라도 꼭 본방 사수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의 사랑, 연애 사연을 보고 들으며, 인생 선배로서 패널들이 함께 고민하고 조언해주는 프로그램이다. 5명의 MC들은 성격과 반응이 모두 제각각이고 개성이 넘친다. 하지만 이렇게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음에도 모두 만장일치로 “하지마! 제발!”이라고 외치는 행위가 있다. 바로 연인의 핸드폰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연인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빌려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한 후에 로그아웃 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다. 


두 가지 행동의 공통점은 바로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허락’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사생활을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바람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사람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결백하더라도 상대방이 걸고넘어지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 조차 문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인의 스마트폰을 몰래 보는 행위는 보는 사람도 떳떳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왜 허락 없이 봤냐고 따지면 피차 할 말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내 실수로 연인의 노트북에서 로그아웃을 하지 않아 정보가 남은 경우에는 그가 내 사생활이 담긴 내용들을 봤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애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서 MC들이 제발 로그아웃 좀 하고, 또 허락 없이는 절대 연인의 정보가 담긴 것들을 염탐하지 말라고 부득부득 말리는 것이리라. 


출처 : KBS Joy <연애의 참견 2> 영상 캡처


나 또한 MC들의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연인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몰래 보는 것은 최악이고, 연인이 실수로 로그아웃 하지 않아 노트북에 그의 정보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눈 딱 감고 로그아웃을 누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좋지 못한 내용을 봤다면 몰래 봤다는 나의 행동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게 될 것이다. 설사 연인이 로그아웃 하지 않아서 어떤 정보를 알았더라도 실수는 실수일 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에 배터리가 방전된 남자 친구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급한 메일을 확인했어야 했고, 메일을 확인한 후 실수로 로그아웃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그는 로그인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평소 자신의 습관대로 ‘자동 로그인’ 버튼을 클릭했다. 덕분에 얼마간 해당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면 그의 아이디로 로그인된 상태가 지속되었던 듯하다. 그런 사실을 그도, 나도 모른 상태에서 나 또한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메일함에 들어가자마자 내 아이디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로그아웃 하려 했지만 하필 그가 메일과 메신저로 나눈 대화들이 메일함에 한꺼번에 저장되어 전면에 떠있었다. 클릭해서 내용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친구와 나눈 대화의 일부에서 내 험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성격과 데이트할 때의 피곤함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평소에는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허허실실 웃으며 넘어가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아 눈물이 핑 돌고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어쨌든 남의 사생활을 멋대로 본 꼴이 되어버렸기에 바로 로그아웃하고 남자 친구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몇 달을 더 사귀다가 다른 일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비밀을 알게 되는 건 굉장히 불쾌하다. 무거운 감정을 어깨에 짊어지고 외로이 사막을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확실하게 헤어질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의 이중성이나 비밀을 알고도 당당하게 따지지 못하고 혼자 앓을 수밖에 없어 더욱 힘들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도 결국 타인이다. 타인의 사생활은 내게 직접적인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거나 직업, 학력 등을 속이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 일차적으로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단점 몇 가지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듯 그도 내가 백 퍼센트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닐 거다. 물론, 앞에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 좋은 척하면서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은 한참 잘못되었다. 서로 사랑한다면 어떤 단점과 불만을 이야기하더라도 받아들이고 미안한 기색을 보일 것이다. 그러니 몰래 뒤를 캐기보다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게 어떨까? 모순 많고 표리 부동한 게 사람이라지만 사랑 앞에선 솔직함이 제일이니까 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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