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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Apr 26. 2021

사랑은 과학인가

섹스는 과학이다. 하지만 섹스와 사랑이 같은 말은 아니다.


답할 수 없는 질문 


당신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볼 때. 특히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바라볼 때. 


당신은 인생의 어느 순간 삶을 향해 물어보았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좌절과 절망뿐이다. 당신은 불현듯 알게 된다. 이 우주가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뗏목이다. 그것도 난파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린 뗏목.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이제 먹고사는 일에만 집중할 것이다. 물론 저 질문들을 삶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인간은 근본적인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물음들에 시간을 계속 쏟을 수는 없다. 우선은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당신은 저 질문들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돈을 벌고 재산을 불리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당신에게 자신이 찾은 삶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떠들어댄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정신병원에 가보라는 대답 말고는 그 어떤 다른 말도 할 수가 없다. 정신이 아프면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정신병원은 좋은 곳도 아니고 나쁜 곳도 아니다. 정신이 아프면 가는 곳이 정신병원일 뿐이다. 나 역시 단골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드디어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공손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여기서 차로 15분만 직진하면 당신을 받아줄 병원이 있다고. 꼭 회복하길 바란다고. 



알 수 없는 단어, 사랑 


사방에서 사랑을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자신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픽업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여자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진화 생물학을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다. 연애 컨설턴트들은 어떻게 하면 남자가 당신에게 푹 빠지는지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심리학을 자기주장의 근거로 사용한다.  


나는 그들을 의심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브의 딸이다. 이브는 신의 말씀조차 의심했고 그렇게 선악과를 먹었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신의 말씀을 의심한 여자의 딸이다. 그러니 무엇인들 의심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묻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가?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사고한다. 우리는 ‘사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우리는 사과를 본 적도 있고 먹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섹스'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우리는 섹스를 해 본 적도 있고 남들이 섹스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가? 도대체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당신이 거만하지 않고 솔직하다면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모른다.” 


모든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언어는 지칭하는 대상이 불분명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인간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랑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누구도 자신이 사랑을 알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사랑 앞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모든 인간은 사랑 앞에서 혼란과 혼돈을 느낀다. 모든 인간은 사랑 앞에서 바보가 된다. 사랑 앞에서는 멘토도 전문가도 있을 수 없다.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 사랑 앞에서도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사랑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과학과 사랑 


픽업 아티스트들이 여자와 섹스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면 난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섹스라는 단어는 지칭하는 대상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섹스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섹스가 곧 사랑인가? 나는 사랑 없는 섹스를 많이 해보았다. 당신도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면 말할수록 사랑은 더럽혀질 뿐이다. 사랑은 인간의 앎 너머에 있기 때문에 가르침이나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 사랑을 추구할 수는 있다.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당신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뗏목이다. 그것도 난파된 뗏목이다.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서 추위에 떨고 있던 어느 날, 당신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았다. 하지만 당신은 저 별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당신의 착각에 불과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당신은 나아간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는 별을 향해 당신은 온몸을 움직여 바다를 가로질러 본다. 사랑이 곧 저 별이다. 인간이 사랑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것뿐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들어대는 건 자만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다. 당신은 사랑을 안다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입을 놀려대는 그런 형편없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오만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나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바로 나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미안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서.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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