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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17. 2022

남녀관계는 꼭 격투기 같아서
긴장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

애정과 신뢰는 공존할 수 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 속이 시원해지는 일이기도 하죠? 묵은 체증이 싹 사라지는 느낌. 맑고 따스한 하늘을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다니는 느낌. 물이 나인지 내가 물인지 모르는 물고기가 되어 청량하고 투명한 강가를 헤엄치는 느낌. 꽃 위에 살포시 앉은 후 자연의 향기에 취해 꿀을 채취하는 것도 잊은 벌이 된 느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질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저는요, 오늘 잠깐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에게 이별을 말했으니까요. 



내 마음은 모르겠지만, 내 몸은 알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인품이 바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별을 말했다고 해서 저에게 육체적 해를 가할 사람은 아니라는 소립니다. 정말 다행인 일이죠.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제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몸속에 어떤 날카로운 물체를 지니고 다니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아래로 67도 정도 숙인 채 “알겠어”라고 작게 되뇌었습니다. 그리곤 그의 손가락 끝이 조금 떨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손가락보다 더 떨렸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저도 이별 통보를 받은 적이 있으니 그의 마음을 얼추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죠. 공감이라는 걸 할 수 있으니까요. 호랑이도 공감을 하나요? 그렇다면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감히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네요. 오만했습니다.


'정말 깔끔한 사람이야.'

저는 이별 통보를 들은 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어떠한 질척거림도 없이 깔끔하게 내 생각을 인정하는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이런 일이 흔한 건 아니죠. 가끔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을 거면 도대체 왜 이별을 하자고 했어? 지금 말하는 거 들어보면 좋은 사람 같은데 왜 헤어졌지? 이렇게 비수 꽂는 질문을 하는 여러분께 말하겠습니다. 제가 그에게 이별을 말한 이유는 그에게 제 몸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제 몸이 반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네, 저는 제 마음은 모르지만 몸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 저는 제 몸을 통해서 제 마음을 유추해봅니다.



몸이 마음에게 명령한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그는 착해요.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그는 저를 짜증 나게 하지도 않고 저를 즐겁게 하지도 않으며 저를 설레게 하지도 않고 저를 슬프게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를 연인이 아니라 동반자처럼 느낍니다. 같이 있으면 편합니다. 하지만 우리 관계에서는 그 어떠한 역동성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안정을 원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이 남자는 정말 나만 바라볼 것 같다. 이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을 것 같다. 이 남자는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우선일 것 같다. 뭐 이런 느낌이 드는 사람과 만남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몰랐습니다. 안정이 이렇게 숨 막히는 답답함을 줄 거라는 걸. 신뢰는 애정을 깎는 조건으로 얻는다는 걸.


질투와 애정은 함께 갑니다. 애정이 없으면 질투도 없고 질투가 없으면 애정도 없습니다. 남녀 관계는 꼭 격투기 같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주어야만 재미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러한 긴장감을 단 하나도 느낄 수 없었고 그렇게 제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에게 문제가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저 그와 제가 맞지 않는 인연이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겠습니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간사 아닐까요? 그러니 슬퍼할 것도 없고 절망할 것도 없고 분노할 것도 없고 즐거울 것도 없겠습니다. 그저 만남과 헤어짐이 다시 반복되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또 반복되겠지요.


저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 연애를 통해 신뢰와 애정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게 긴장감을 주고 가끔은 저를 짜증 나게 하고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 끌리는 그런 역동성이 제가 원하는 관계라는 걸 알겠습니다. 이게 사랑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몸이 마음에게 명령합니다.


“나의 반응이 곧 사랑이다. 마음이 먼저 있고 몸의 반응이 있는 게 아니라 몸의 반응이 먼저 있고 마음이 그걸 사랑이라고 합리화할 뿐이다.”


제 몸이 그렇답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만남에 너무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겠네요. 그저 몸이 본능대로 반응할 뿐이니까요. 인간도 동물인 것입니다. 인간이라고 특별할 건 없습니다.





에디터 김세라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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