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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19. 2020

난 오늘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난 건 눈물만은 아니다

어느 날, 드라마를 보다가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한쪽 눈에서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내게도 호르몬에 변화가 생겼다. 이 이야기는 처음 겪는 40대 나의 신체 변화에 대한 작지만 기억하고픈 기록이다.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주말 오후였다. 주말이면 항상 아이들과 외출이 잦았던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외출하고 돌아온 뒤라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주말 오후라 기분만큼은 좋은 상태였다. 오늘 저녁을 즐겁게 보내도 내일 하루가 나에게 더 선물로 주어지는 선물 같은 하루이기 때문에 외출로 인했던 피곤함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나에겐 가족들과의 시간만큼 중요한 게 한 가지  있다. 항상 가정적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나에게도 유일하게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바로 TV 드라마 시청 시간이다. 난 예능이나, 시사 프로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유일한 나의 애창 장르는 드라마이고, 드라마의 장르도 막장을 제외하고는 크게 가리지 않는다.


  그날도 저녁 식사 후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고, 시청하던 드라마도 종방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드라마는 지금도 신드롬으로 기억하는 '도깨비'. 도깨비 공유가 김고은을 구하고 사라지는 장면, 바로 그 장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김고은은 절규하였고, 그 장면을 보는 내내 안타까움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다. TV를 집중하며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눈 앞이 조금 뿌옇게 되는 느낌이 났고, 눈 아래로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언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또 그 녀석은 흘렀고, 코까지 조금 찡해지는 게 아닌가? 이런 느낌이 익숙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몸에 변화가 조금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감성이 풍부하긴 했지만 드라마를 보며 눈물까지 뽑다니, 신선한(?) 내 몸의 변화에 내 아내가 놀리면서 그날의 눈물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날 이후로 조금만 슬픈 장면만 나오면 원래부터 난 울보였던 것처럼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원래부터 슬픈 장면에 눈물이 많아서 사실 슬픈 장면이 있는 영화를 보러 갈 때면 항상 손수건을 챙겨 가고는 했다. 하지만 내 몸의 변화가 생기면서부터 그 수건은 한 장이 아닌 두 장씩 준비를 해야 했고, 둘이 영화를 보러 가서는 어깨 들썩이며 둘이 함께 우는 꼴이라니. 이렇게 풍부해진 감수성 덕에 눈물과 콧물의 장르는 드라마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장르로 퍼져갔으며 아내와 콘서트를 간다던가 TV에서 하는 예능을 보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으로 진정이 잘 안될 때가 늘어나고 있어서 조금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막상 익숙해지고 나니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울면 시원해진다는 느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40대의 순수한 호르몬 변화에도 적응해가며 이제는 정상적인 신체 변화라고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엔 중년의 남성이 영화관에서 훌쩍 거리며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는 모습이 남자답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니 그냥 슬픈 장면을 보면 슬퍼할 줄 알고, 노래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끼는 감수성에 울컥하는 나의 감정이 솔직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거울 같다는 생각에 나쁘지 않은 좋은 변화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면서 불편해지고, 힘든 점이 많이 생긴다. 체력이 예전만 못해지고, 땀이 나도 유독 겨드랑이 땀이 더 많이 나고, 팔자 주름에, 눈가에 잔주름까지. 머리 회전도 더뎌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함만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인생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 어떤 사람은 다시 20대,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난 지금이 딱 좋다고 얘기하고 싶다. 인생은 60부터라는데 난 아직 40대 후반이니 멀었다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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