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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29. 2020

남과 다를 것 같은 우리 부부의 세계

그들도 그렇듯 우리도 우리만의 세계가 있다

아내와 나는 부부로 연을 맺고 함께 살아온 지 어느덧 19년이 되었다. 처음 시작이 힘들었지만 우리 두 사람의 두터운 신뢰와 사랑으로 긴 시간 동안 잘 지내왔다. 20년을 바라보는 결혼 생활에 그렇게 마음 아파하고, 상처가 될만한 일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라 아내는 생각이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을 위한 울타리를 만들고 나서는 첫째도 가정, 둘째도 가정이었다는 건 아내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긴 시간인 것 같지도 않다. 생각해보면 웃을 일도 조금은 서운했던 일도, 가슴 아팠던 일도 있었겠지만 우리 부부는 늘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어제처럼 말이다.




   작년 '82년생 김지영' 이란 영화를 보면서 아내와 내가 가장 공감했던 장면이 있다. 명절에 주인공 '김지영'이 시댁일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부모님 댁으로 가려고 하는데 주인공(김지영)의 시누이가 일찍 오는 바람에 서둘러 나갈 타이밍도 놓치고, 설거지를 하면서 감정이 상한 주인공에게 시어머니가 얼른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하는 그 장면. 아내와 난 세상 시어머니는 똑같구나 생각하며 영화 끝나고 공감했던 적이 있다. 우리 부부에게도 영화 속 장면과 유사한 그림이 여러 차례 그려진 적이 있었고, 늘 그 중심에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었다.

 

  우리는 매번 명절 이틀 전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명절 오후면 처갓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 반복되는 일상이 꽤나 눈치가 보였고 힘이 들었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 못해 조금은 지나쳤던 어머니는 자식을 하루라도 더 곁에 붙들어 놓으려고 편하게 처가에 가라는 말씀을 먼저 해주지 않으셨다.  매번 명절이 싫었던 이유도 이렇게 불편한 장면들이 자꾸 반복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한 번은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가 어머니에게 혼줄이 났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장가가서 아들까지 있는 자식에게 쉽지 않은 행동과 처사였지만 워낙 성격이 한 성깔(?) 하시는 분이라 아버지도 말릴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어머니, 저희 갈게요. 시우(여동생) 올 때까지는 기다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곧 온다잖니. 우리 가족 이렇게 명절에 다 모이기도 힘든데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겠어?"

 "어머니, 영희도 처갓집에서는 귀한 딸이라고요. 장모님 눈 빠지게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의 표정은 금세 굳어졌고, 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들, 내가 매번 그러더냐? 결혼하고서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거야. 너 같은 자식 필요 없다. 이 참에 호적 정리하자. 호적에서 파요, 여보. 아들 없는 셈 칩시다."  아내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울음을 보였고, 난 나대로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서 그날은 어머니와 더 말을 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답답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나도 아내도 세상 시부모 똑같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아마 아내에게는 이 장면이 평생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물론 돌아가시기 전에는 너무 약해진 모습에 이때 모습이 가끔씩 그리웠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자주 뵙는 건 아니었지만 나와 아내에게는 아마도 속에 하고 싶은 말 담아놓지 못하는 어머니 성격 탓에 마음 아파한 일이 꽤나 있었지 싶다. 이런 영화 같은 일들은 공감은 하지만 남들이 모를 우리 부부만 아는 그런 부부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아내는 전업주부다. 집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밖에서 일하는 남편인 나를 훌륭히 내조하고 있는 현모양처다. 이런 아내도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저녁 약속이 다. 당연히 꽤나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오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라 나도 아이들도 잘 아는 분들이다. 서울에 살 때는 늦은 시간이어도 아내 혼자서 집에 귀가하고는 했지만, 지금 사는 고양시로 이사하고 나서는 주말엔 열차 시간 간격도 뜨문뜨문이고, 늦은 시간 인적도 드문 편이라 아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는 시간에는 난 항상 마중을 나갔다.


   예전 신혼 때나 30대 중반 때만 해도 아내의 저녁 외출이 있으면 항상 마음 졸이고, 걱정하고 아내의 귀가 시간까지 깨톡(아마 그때는 문자였을 수도)으로 아내를 귀찮게 했었던 것 같다. 언제 들어오냐, 술은 많이 마셨냐, 세상 흉흉하니 너무 늦지 마라 등과 같이 걱정을 가장한 잔소리에 간섭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내가 약속이 있어서 외출하고 나면, 돌아오기 전까지는 일절 아내에게 깨톡이나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젊을 때는 아내 걱정도 했었지만 그땐 아내에 대한 나의 신뢰가 부족한 게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아내를  신뢰하는 만큼 아내의 시간과 취미, 일을 모두 존중한다. 아내의 약속을 존중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매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외출한 아내를 위해 지하철역으로 마중 갈 때면 아내는 함께 만난 분들이 종종 부러움 섞인 핀잔을 준다고 한다. 아직까지 신랑하고 그렇게 지내냐, 자신들이 아는 부부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산다는 . 어찌 되었든 아내는 입으로는 '그 정도는 아니다, 이런 게 꼭 좋지만은 않다'는 부정 아닌 부정을 하지만 나오는 말과는 다른 싫지 않은 표정 때문에 늘 부러움을 산다고 한다. 나를 보고도 늘 같은 말('뭐하러 나왔어요')을 반복하지만 항상 반갑게 맞이하는 아내를 볼 때면 오길 잘했네 싶다.


   오늘도 아내가 작년부터 준비해온 '유기농업 기능사' 기시험이 있는 날이어서 휴일 아침부터 서둘러 함께 시험장에 왔다. 고양시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먼 길이였지만 아내와 함께 이렇게 둘이서만 움직인 것도 오랜만이고, 아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창 밖으로는 봄비가 내리고, 따뜻한 커피와 브런치 글을 쓰는 이 감성, 이 행복감에 젖어있는 지금이 좋다. 아내와 함께하는 오늘이 좋다. 곧 아내가 시험을 끝내고 나올 시간이라 슬슬 나서야 할 듯하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난 특별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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