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三災)란 수재·화재·풍재 등 사람에게 닥치는 3가지 재해를 뜻하는 민간 용어. 도병재(刀兵災)·질 역재(疾疫災)·기근재(飢饉災)와 세계를 파계(破戒)하는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가 있다. 사람에게 드는 삼재년(三災年) 또는 액년(厄年)은 해마다 누구에게나 드는 것이 아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어릴 때 한, 두 번씩은 다들 들어본 이야기이다. 난 어릴 때부터 주변에 사주나 풍습을 믿는 분들이 있어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철수야, 넌 올해부터 삼재니 내, 후년까지 조심해야 해."
"한참 삼재 중이니 올해는 물놀이를 가면 안 돼. 딱 물 조심해야 할 팔자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특별히 더 조심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물론 부모님들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만 잠깐 놀라거나, 귀 기울여 듣는 듯했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면 언제 삼재였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무던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귀담아듣지 않았던 혹은 지나쳐버렸던 일도 어쩌다 내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핑계대기 좋은 삼재 탓을 하고는 했다. 삼재여서 아프다느니, 다쳤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집안 어른들은 잠시나마 이 풍속에 믿음이나 신뢰를 보이곤 하셨던 기억이 난다.
원래 삼재는 9년에 한 번씩 와야 하는데, 내게 삼재는 3년마다 아니 어릴 땐 그냥 쭈욱 삼재로 지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더욱 이 삼재 딱지가 등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내게 무슨 일만 있으면 모두 삼재 탓을 하는 분들까지 계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시골집은 마당에 집주인 할아버지의 사료 공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어릴 때는 공장 옥상이 나의 놀이터이자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노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날도 옥상에 올라가 친구들과 놀다가 맞은편 건물 옥상에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여자 친구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그 친구를 놀려주기 위해 작은 돌멩이를 그 친구 주변에 던지고 그 친구가 보면 숨고, 다시 던지고, 다시 숨고를 반복하는 장난을 했다.
그러다 던지고, 숨고 하는 템포가 맞지 않아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깜짝 놀란 나는 조금 높이가 있는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이렇게 뛰어내린 순간 허벅지에 통증이 왔고, 통증 있는 허벅지를 보려고 다리를 들자 통증은 더 심해져 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내 허벅지는 어딘가에 끼어 쉽게 빠지지 않았고, 다리를 조금 틀어 빼고 보니 이내 허벅지 뒤가 흐르는 피로 붉게 얼룩지고 있었다.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내 머릿속에선 퍼뜩 엄마에게 크게 혼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날 사고로 난 어머니 등에 업혀 병원 응급실로 갔고, 상처는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을 정도로 크게 찢어져 서른 바늘이나 꼬매는 대형참사로 기록됐다. 이 일이 있고 딱 1년 뒤엔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다 발밑에 줄을 못 보고 난간을 뛰어내리다 줄에 걸려 넘어졌다. 고꾸라진 몸은 중력의 법칙을증명이라도 하듯 내 몸의 가장 무거운 부분인 머리가 아래로 내려가게 자세를 고쳐 잡았고, 그렇게 내 머리는 거칠고, 딱딱한 시멘트 단면과 조우했다. 아쉽게도 내 머리는 단단히 자세를 잡은 시멘트에 커다란 자국을 남기고, 내 머리엔 일명 '땜방'이 되어버린 상처를 남겼다. 그 후 대략 1년 뒤엔 자전거를 타고 놀다 학교 후문 내려오는 언덕에서 심하게 넘어져 팔을 크게 다친 일도 있었다.
3년에 걸쳐 발생한 사고 덕에 어머니는 삼재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됐고, 그땐 나도 나이도 어렸고, 비슷한 시기에 3년을 계속 다치다 보니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3년에 걸친 사고는 잊혀져 갔고, 삼재로 겪였던 불편한 현실은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날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머니도 더 이상 삼재 얘기를 꺼내는 일은 없으셨다.
나이가 먹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를 키우던 부모님 세대들이나 또는 그 전 세대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이런 일들로부터 미리 조심시키려고 아마도 삼재의 얘기를 빌어 사건, 사고를 막고자 했던 부모님들의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표현만 달랐지 예전도 지금과 다를 게 없는 듯했다.
그나저나 아내와 결혼할 때도 삼재 운운했던 것 같은데.... 하긴 아홉수에 걸리면 안 된다고 스물여덟에 결혼한 것도 삼재 피하는 것하고 별 다를 것 없는 얘기 같다. 지금 우릴 보면 이렇게 잘 사는데 말이다. 우린 뭘 겁낸 건지 지금 생각해도 사주라는 게 알고 나면 찜찜한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