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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22. 2021

취미가 일이 된 아내의 첫 출근

18년 만의 출근 축하해요

 "철수 씨, 오늘 첫 미팅에서 이사님이 직원들한테 날 가드너라고 소개하는데 기분이 이상한 거 있죠?"


아내가 오늘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회사와 처음 미팅을 하고 왔다. 아마 업무 미팅을 하는 게 처음이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너무 오랜만이라 아내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새롭고, 설레었을 거 같다. 이런 첫 상견례 자리에서 업체 측 대표로 나오신 이사가 아내와 아내 동료를 소개하면서 붙였던 직함이 아내를 무척 설레게 만들었다고 했다.


 "자, 다들 인사하세요. 여기 계신 두 분은 이번 달부터 우리 회사와 함께 일하실 가드너 분들이 세요"


 가드너(Gardener)


아내는 그 이름만 생각해도 지금도 설렌다고 한다. 아내는 지금 시작하는 일을 맡게 된 것만 해도 너무 기쁜데 생각지도 못했던 직함을 받으면서 설레는 기분을 넘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아내에게 감동을 준 아름다운 이름 '가드너'. 

쉽게 생각하면 원예사의 개념이지만 아내가 하는 일은 단순한 정원사나 원예사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아내와 계약한 업체가 꽃을 심거나, 가꾸기를 원하는 수요처로부터 사업을 수주하면, 회사에서 아내와 같은 가드너 팀에게 수요처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수요처의 요구사항에 맞게 계획하고, 설계하여 외부 용역 하는 분들에게 설계된 업무를 지시, 감독, 때로는 함께 수행하는 일을 가드너들이 하게 된다. 건축으로 비유하면 건축 설계와 시공 책임자의 업무를 함께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아내는 꽤 오랜 시간 이 일을 생각하고, 계획했었다. 결혼 전부터 식물 가꾸기를 좋아했었고, 결혼 후에도 좁은 집에서도 가꿀 수 있는 식물을 찾아 집 안팎 식물을 키우고, 가꿔왔었다. 이렇게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집 근처 꽃 가게는 아내의 단골가게이면서, 때로는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됐다. 또 꽃 가게가 바쁜 졸업시즌이나 5월만 되면 아내는 바쁜 꽃 가게 사장님들 손도 덜어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꽃도 만지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조금씩 늘여가던 중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근처 마을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텃밭' 활동을 하게 되었고, 농협대에서 진행하는 조경가든 대학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취미에서 일로서 전환을 꿈꾸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아내는 두 개의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고, 같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과 함께 꾸준히 지금의 활동을 준비했다.


얼마 전 이렇게 내공을 다지며 준비하던 아내에게 뜻밖의 기쁜 소식이 찾아들었다. 취미 활동을 함께하던 동료분께 지금 아내와 계약한 업체로부터 함께 일을 하자는 제안이 온 것이다. 고맙게도 이 동료분은 업체에 아내를 추천했고, 이렇게 첫 상견례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을 준비해 온 아내에게 설렘 가득한 첫 작업일이 이제 머지않았다. 당장 금주부터 이번 달 말에 작업할 식물원 벤치마킹의 일환으로 회사에서 작업한 지방의 식물원을 둘러보고 온다고 한다. 18년 만에 아내의 첫 출근,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아내의 기분은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에 결실이 들어 아내 본인이 가장 기쁘겠지만 지켜봐 온 나도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이 든다.


아내가 첫 출근하는 그날이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18년을 전업 주부로만 지내다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매일은 아니지만 작업이 있는 날이면 새벽 일찍 출근했다가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다. 말이 가드너이지 아내 본인 말로는 힘쓰고, 몸 쓰는 일도 제법 많을 거라 체력이 걱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려보지 않는 이상 그 어려움이나 한계는 알 수가 없다는 걸 안다.


아내의 출근으로 우리 가족의 일상도 조금은 변할 듯하다. 변화된 일상들 모두가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가족이니 조금 불편함과 서운함도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때로는 티키타카 하면서 사는 거 아니겠는가. 우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족이니까.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내를 응원하고, 돕는 일만이 남았다. 매일 나가는 일은 아니지만 아내가 일을 나가는 날은 출근 전에 아이들을 내가 조금 더 챙기고, 일 마치고 들어온 아내가 힘들 테니 집안일도 더 많이 분담해야겠다. 아내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응원을 보내는 게 가족이 할 일인 듯하다. 당장 이틀 뒤가 아내의 첫 출근이다. 어느새 아내의 마음에는 설렘의 크기만큼이나 행복의 크기도 커 가는 것 같다.


 "영희 씨, 파이팅~!!!"

아내가 조경가든 대학 과정중에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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