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지갑은 아내의 신분증과 카드 등을 담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만큼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아 군데군데가 낡고 한쪽은 떨어지기까지 했다. 수명을 다 한 낡은 아내의 지갑을 보며 늘 새로 사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아내는 번번이 나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냥 조금 더 쓰면 돼요'
'마음에 드는 지갑이 없네요'
하지만 얼마 전 아내는 당근 마켓에 올라온 물건을 보여주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보여준 물건은 여성용 지갑이었고, 얼마 전에 올라온 물건에 아내는 '관심'을 눌러놓고 가격이 조금 더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아내가 보여준 두, 세 종류의 지갑을 확인하고, 그중에 조금 더 마음에 들었던 지갑을 선택했다. 아내도 이런 내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구매 전 한 참을 고민하며 망설였다.
"영희 씨, 마음에 들면 그냥 사요. 브랜드도 있는 제품이고,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은데"
"그래도 혹시 택배비라도 조금 깎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냥 그 지갑 말고 새 걸로 사는 게 어때요?"
"에이, 내게 지갑은 사치 같아서 싫어요. 꼭 필요하긴 한데 새 걸로 사긴 아까워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아내의 지갑은 결혼 후 새 걸로 산적이 한 번이 없었다. 지금 쓰는 지갑도 새것이긴 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아내의 지인이 전에 아내가 쓰던 지갑이 떨어져 가는 걸 보고는 선물했었던 것이었다.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던 그 지인분이 보기에도 아내의 낡은 지갑은 바꿔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지인의 남편분 회사에서 나왔던 여성용 지갑을 그렇게 아내에게 선물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선물로 받아 사용한 게 벌써 6년은 넘은 것 같다. 벌써 자기 수명을 다했지만 그래도 아내는 얼마 전까지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아내는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들이나 내가 사야 할 옷을 구입할 때는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자신의 지갑 하나 사는데 이렇게 아까워했다. 유독 지갑뿐만이 아니다. 올 가을부터 겨울에 입을 마땅한 재킷이 없다고 늘 얘기하던 아내는 코로나 덕에 외출이 없는 관계로 올겨울도 재킷 구매 없이 그냥 넘어가도 될 듯하다고 '빈곤 속의 풍요'를 즐기는 듯했다. 내가 등이라도 떠밀지 않으면 올 겨울은 새 재킷 구매 없이 그냥 넘길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난 매달 받는 급여 외에 가진 재주를 조금 부려 번외 수입을 조금 챙겼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조금 주고 아내에게는 무언가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아내가 얼마 전까지 노래를 불렀던 재킷을 사준다고 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백화점이나, 오프라인 쇼핑몰을 갈 수가 없으니 온라인이라도 쇼핑을 권했다. 아내는 복권이라도 맞은 것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길 꺼낸 지 한 달이 넘었고, 그냥 그뿐이었다. 아내는 지금 상태로 올 겨울을 그냥 넘길 것이다. 특별한 외출이 있지 않는 이상.
아내는 자신의 옷, 신발, 지갑이든 필요한 물건 구입을 위한 선택이 무척 까다롭다. 매번 함께 쇼핑을 할 때면 아내의 눈높이가 높아서 긴 시간을 돌아다니고 허탕을 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내의 눈높이가 높은 이유를. 아내는 이렇게 어렵게 고르고, 골라서 구입한 물건을 오랜 시간을 입고, 쓴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곁에 두기 위해 자신에게 어울리고, 마음에 꼭 두는 물건을 구입한다. 아내 나름의 절약의 철학이고, 이유이다.
아내는 자신에게 왔다가는 물건들은 불쌍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정말 모든 쓰임을 짜내고, 짜내 닳고, 닳을 때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오늘도 아내는 그렇게 당근 마켓에서 지갑을 구입했다. 택배비를 깍지는 못했지만 새 지갑의 30퍼센트 정도 되는 가격으로 중고 지갑을 구입했다. 이번에 산 지갑은 얼마나 아내 곁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껏 쓸모를 다하면서 아내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