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는 마음

20년 만에 아내의 직장을 찾았다

by 추억바라기

"출근해요? 영희 씨, 오늘 하루도 파이팅!"


결혼하고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 후 우리 부부가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 때만 해도 주 6일 근무가 평범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재직했던 회사는 격주 토요일 근무여서 2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은 휴무일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다녔던 회사는 격주가 아닌 주 6일 근무여서 2주에 한 번씩은 아내 혼자 출근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출근을 돕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배웅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겐 20년 전 아내와의 달달했던 신혼 시절의 기억들이 소환되어 요즘 뜻하지 않게 기분 좋은 주말 아침을 보낸다. 연애 시절만 해도 아내의 근무지에 자주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내는 지방에서 일을 해서 학생이었던 내가 방학 때면 자주 찾아가는 게 데이트의 연장이었다. 그렇게 연애 시절 직장 방문이 잦았던 나였지만 결혼 후 서로의 직장 위치도 달랐고, 멀기까지 하니 아내의 직장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렇게 함께 짧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아내가 임신을 했고, 그 시기에 아내가 다니던 회사 사정도 좋지 않아서 조금 이른 퇴사를 했다.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양가 부모님들도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른 퇴사 결정을 더 재촉했다. 아내는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선뜻 다시 직장을 다닐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하지만 아내는 몇 년 전부터 다시 자신의 일을 갖기를 원했다. 그 사이 아이들도 컸고, 이젠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들은 넘어섰다. 덕분에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고 꿈꾸기 시작했고, 그 꿈을 좇기 위해 느지막이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업무로 삼기 위해 농협 대학교에서 하는 유료 강좌 수강을 다녔고 수료 때는 마지막 작품으로 작품전 최우수상까지 받는 영애를 안았다. 그 사이 관련 자격증도 2개나 취득했다. 그렇게 노력을 하더니 작년에는 비로소 결실을 맺는가 싶었다. 가드너로서의 새로운 삶을 갖게 되었고, 첫 출근 후 뿌듯해하던 아내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난다. 농담 삼아 조금 더 나이 든 후에는 내가 은퇴 후에 아내의 조수 역할을 하며 노후를 보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에 부풀었던 가드너의 업무는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아내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얼마 아내는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지난 주말 고대했던 첫 출근을 하게 됐다. 입으로는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아내의 표정만은 설렘 가득한 밝은 모습 그 자체였다. 주말 이른 시간에 혼자 집을 나서는 모습이 짠했지만 아내의 가벼운 발걸음을 보며 내심 안심할 수 있었다. 아내가 출근 후에 애들 밥을 챙기고 주말에 해야 할 집안일을 서둘러 마쳤다. 그렇게 서둘러 집안일을 마친 이유는 아내 첫 출근을 맞아 난 깜짝 이벤트를 계획했다. 바로 오늘 아내의 일터를 깜짝 방문할 생각이었다. 아내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20여 년만 이어서 나조차도 설레는 마음은 억누를 수 없었다. 달뜬 마음이 걸음조차 가볍게 하는 듯했다. 아내가 일하는 곳이 걸어서 3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라 그 들뜬 발걸음을 조금 더 오래 느끼기 위해 난 오늘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를 택했다.

함께 점심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춰서 나왔는데 조금은 이른 시간에 와서인지 내 시선에는 아직 일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날 봐줄 때까지 매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아직 봄은 아니지만 화훼단지 안이라 부쩍 주변 분위기가 봄맞이에 열심히다. 그러다 다시 돌아본 시선에 날 보며 손을 들어 보이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고, 쓰고 있는 마스크는 아랑곳없이 입모양으로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우린 점심시간을 가졌다. 매장을 빠져나와 아내와 함께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 조금은 특별한 시간처럼 생각됐다. 아내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한 기분이랄까. 주변에 근사한 식당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오늘 같이 의미 있는 날이자 특별한 날에 둘만의 시간만으로 그리고 이리 반기는 아내의 웃음만으로도 오늘 이벤트는 성공이다.


오랜 시간 아내와 함께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가진 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오늘처럼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아내의 일터를 찾은 건 결혼하고 처음인 것 같다. 아내가 결혼 후 직장을 다닌 기간도 짧았지만 미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던 과거의 내 청춘을 반성한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으로도 그리고 이직하는 회사마다 한 번씩은 깜짝 방문을 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남편이자, 가족의 가장인 내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테고, 이직하고 조금은 긴장하고, 힘들어할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거리와 상관없이 방문하곤 했다. 물론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평일 낮 둘 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도 아내는 아들과 함께 방문했었다. 예전같이 둘만의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들과 함께 오니 응원받는 나로서는 두배로 힘이 났다. 지지와 격려의 힘을 잘 알기에 난 오늘 아내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아내의 일터를 찾았다.


'영희 씨, 늘 옆에서 응원할게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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