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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30. 2022

당신은 거절이 익숙한 사람인가요

사람 쉽게 변하지 않지만 때로는 쉽게 변하기도 한다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예전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 만나는 고객이나 채널사 직원들 중에 간혹 처음 소개를 받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무르익기 전 종종 하던 말이었다. 듣기 싫지는 않지만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될 경우에는 불편한 말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상이 좋으니 당연히 앞으로도 부드럽고, 친절하게 잘해줄 거라는 기대감은 기본일 테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젠 이렇게까지 얘기해놨으니 더 잘 대해줄 거라는 작지만 어려운 기대를 갖고서 나를 대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정말 처음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에는 표현에 신경을 더 썼고, 없던 마음도 포장을 해야 할 것 같아 내 감정을 숨기는 불편함을 참았다. 그렇게 참았던 마음들로 인해 때로는 상처도 입고, 의도하지 않던 말들도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듣기 좋았던 말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갓 넘어 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마트에 가끔 들를 때면 아버지 손님이나, 주변 상가에 계신 분들은 너무 착하다, 착해 보인다는 말을 날 볼 때마다 하곤 하셨다. 앞에서는 인사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으로 행동했지만 실상은 술도, 담배도 일찍 배웠었던 나였다. 그래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바른', '착한' 등의 단어 자체가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자아로 묶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는 술, 담배도 즐겼지만 정작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면 담배도, 술도 몰래몰래 피고, 먹었다. 숨통까지 막힐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정작 내가 아닌 다른 나를 표현하기 위해 그 시절에는 신경 쓰고, 애도 많이 썼었다. 그렇게 애쓰다가도 혹시나 작은 일탈이라도 들킬 때면 뒤며, 앞에서 수군대는 소리 때문에 스무 살도 넘은 성인이 마치 비행청소년이 된 것 같은 불편함에 큰 죄라도 진 것같이 불편해지기 일쑤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그런 기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이미지도 늘 비슷했다. 친절하고, 밝은 분위기에 편안한 인상은 덤이었다. 대부분 함께 일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대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실수하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고,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챙겨줄 거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그랬다. 인상이 좋다며 웃으며 도와달라는 사람들에게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난 종종 그 내민 손을 잡아줬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있는 힘껏 힘을 내어 당겨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될수록 가끔 거절을 할 때면 성질을 내는 건 부탁한 사람의 몫이 되어갔다. 영화『부당 거래』에서 나온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호의로 시작된 도움의 손길이 시간이 갈수록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곤 다. 당연한 '호의'가 되는 순간부터 수평적 관계는 흔들리고, 누구도 정하지 않은 상하의 관계 아니 불편한 종속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박 대리, 내일 저녁에 약속 있어요?"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 나의 사수 뻘인 선배가 내 자리 앞을 지나다 말고 나를 불렀다. 주말 영화관을 찾으려고 계획하며 상영 영화들의 영화평을 찾아보던 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선배를 올려다봤다. 무언가 불안감은 스쳤지만 아내와 영화를 보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순간이라 의미 없이 답을 했다.

 "아뇨. 아직 까진요"

 "그래? 다행이다. 사실 내가 내일 저녁에 K사 야간에 작업을 들어가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처가 식구들하고 식사 약속이 잡혀서 말이야. 혹시 나 대신 내일 야간에 작업 좀 들어가면 안 될까?"

갑작스러운 요청에 어이가 없었지만 내일은 금요일인 데다가 아내와 심야영화를 보기로 결심이 섰던 상태라 싫어도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당장은 아니지만 아내와 내일 영화를 보기로 해서요. 어렵게 부탁하셨겠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한 얼굴로 부탁을 하던 이 과장은 당연히 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해서 그랬는지 낯빛은 실망감으로 어두워졌고, 당황하고 머뭇거리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그동안의 호의가 감사와 고마움의 호감보다는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줬다.

 "박 대리, 와이프하고 영화 보는 거 일요일에 보면 되잖아. 난 처가 식구들하고 식사하는 가족 모임인데 그 부탁 하나 못 들어주는 거야?"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처럼 그는 나를 몰아세웠고, 지금까지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던 마음이 그 실수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의 협박과 회유에 장시간을 시달렸고, 마지못해 내 일도 아닌 그의 업무를 대신 맡아 억지 감사를 받으며 나의 불금을 희생해야 했다.


이 얘긴 함께 일했던 한 동료의 일화다. 평소에 거절을 못하던 착한 한 동료가 종종 자신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 부탁을 받아 동안 고생을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박 대리는 이직을 해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워낙 성격이 밝고 타고난 외향적 성격 덕분에 많은 동료들이 그를 좋아했었다. 특히 동료들이 어려워하는 업무를 처리하거나, 해결되지 않던 고객사 문제 등을 옆에서 보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함께 고민하고, 담당자가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고객사 동행도 서슴지 않는 호의를 보였다. 덕분에 빠른 회사 적응은 물론 지원하는 솔루션에 대한 이해와 기술력도 빠른 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박 대리는 이직한 회사의 동료들과 빨리 친해지고, 제품에 대한 이해와 기술력을 빨리 끌어올리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일들까지 도맡아서 처리해주고, 동료들의 난제도 함께 고민했었던 것뿐이었다. 그런 덕분에 빠른 적응은 플러스된 요인이었지만 그의 태도가 많은 불이익을 가져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도 숙련되고,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다 보니 그의 적극적이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호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업무 태도와 호의가 줄어들수록 그를 질타하고, 변심했다는 비아냥 등의 뒷담화를 일삼았다. 거절하는 그를 두고 '사람이 변했다', '거만해졌다'는 식의 몰아세우기 마녀 사냥을 앞세웠고, 정작 그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오히려 이용을 당했다는 식의 사고로까지 번졌다.


 사람은 늘 변한다. 아니 변해야 살 수 있다. 물론 사람의 근원적인 성향이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에 맞게끔 태도나 자세는 변해야 어느 조직에서든 살아남고, 잘 적응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누구를 위해 일한다기보다는 당사자인 나를 위해 모두들 그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온 힘을 쏟는다. 어떤 조직에서든 변하지 않고 머물면서 잘 살 수 있는 건 몇 안 되는 천재성을 가졌거나 자신만의 독보적인 기술력, 노하우가 있는 경우일 때만인듯하다.   


좀 더 좋은 조건이나 환경을 위해 옮긴 직장이라면 더 현실에 와닿는 얘기다. 첫 직장에서 십 년 전에 배웠던 기술이 십 년 후 다른 직장에서 똑같이 밥벌이하는데 쓰이기 어렵듯이 세상이 변하듯 사람도 변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 상황에 맞는 적극성이나 성실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직해 온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선택한다. 그게 친절함일 수도 혹은 시키지도 않은 적극성과 성실함일 수도 있다. 이런 그들의 자세나 태도에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단지 그들의 호의가 생존과 관계가 있음을 인지한다면 조금은 유연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늘 변한다. 그렇게 적극적이고, 호의적이었던 그들도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면 회사에 잘 적응했을 테고 다시 자신의 원래 성격이나 성향으로 조직생활을 할 것이다. 이런 태도에 조금은 당황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는 단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선택했고, 안정되면 다시 자신의 성향이나 성격을 찾기 마련이다. 괴변 같지만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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