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Apr 17. 2023

대학 갔으면 된 거 아니냐는 말에...

워라밸의 가치는 정확한 균형이 아닌 탄력 있는 유연성이 아닐까

"민수야! 어디 갔다 오냐?"

"오랜만이야. 응? 나, 독서실 갔다 와"

"넌 아직도 공부냐. 대학 갔으면 된 거 아냐"


며칠 전 아들이 집 앞에서 중학교 친구를 만나서 나눈 대화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은 한창 시험 준비 중이다. 주중에는 학교 과제나 수업 준비 등으로 바빠서인지 지난주부터 독서실에 가서 본격적으로 시험준비 중이다.


작년 학기를 끝내자마자 12월에 시작한 건 학교에서 진행하는 진로 프로그램이었다. 그래봤자 대학교 1학년을 마쳤을 뿐이다. 신청한 프로그램은 '예비 직무 전문가 양성과정'이었다. 유사 과 동기 선후배들과 그룹으로 진행되었다. 8주간의 긴 시간을 자료조사부터 실무 현장 인터뷰에 마지막 발표준비까지 방학을 정신없이 보냈다. 정작 3, 4학년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여서 딱해 보였다.


"직무 전문가 양성과정 취지는 좋은데 정작 고학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아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작 돌아온 답변은 더 놀라웠다.  

"고학년 때는 신청해도 워낙 경쟁률이 세서 프로그램 참여 자체가 힘들어요. 그래서 저학년 때 진로 프로그램 참여했던 사람에게 우선권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에게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요즘 세대들의 취업에 대한 부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겁다.


회사만 들어가면 모든 게 이뤄질 줄 알았다.


23년 전 여러 차례 도전 끝에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 합격 소식만큼이나 기뻤다. 당장 입사만 하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학교에서부터 경쟁이 익숙했다지만 20대 후반의 나이에 입사를 위해 경쟁을 한다는 게  스무 살 때의 마음과는 또 달랐다.


입사 첫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장을 입고, 첫 출근에 나섰다. 잘못 찾아갈까, 늦을까 하는 걱정에 처음 여러 날은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섰다. 아침 시간에 사원증을 매고, 정장을 입는 게 당시 20대 끝자락에서는 희망이자 꿈이었다. 그렇게 직장인만 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순탄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한 건 나뿐이었고, 제대로 된 인생의 쓴 맛은 직장에서 맛봤다. 전공과정 4년을 마치고 들어갔다고 해도 입사해서 일을 하던 선배들에게는 그냥 신입이었다. 뭘 잘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시절이다. 입사하고 바로 성과를 기대한 사람은 정작 나 하나뿐이었다. 그냥 열심히 해야 하는 시절이라는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러 차례 실수도 하고, 실수하는 과정에서도 떠 숙련되는 과정이었다.


요즘은 모든 게 어렵기도 하지만 쉽기도 하다.


난 공대생이었다. 그래서 인문계열이나 순수 과학계열보다는 취업이 잘 되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런 장점 때문에 공대생이 되었지 싶다. 내가 입사를 위해 준비한 거라곤 대학교 3, 4학년 성적 관리, 필요한 자격증 한 개 그리고 약간의 영어. 물론 부족한 영어 탓에 아직까지도 조금 후회는 남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 취업 준비를 하는 취준생들은 준비도 남다르다. 전공 선택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한 자격증도 한 두 개를 취득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영어는 기본 중에 기본으로 생각한다. 여기에다가 다양한 인턴쉽 활동, 봉사활동, 어학연수까지 대단하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다. 그리 준비하려고 하니 대학 4년이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는 게 맞다.


취업 준비하는 예비 직장인들에게는 취업 자체가 어렵다. 당연히 경쟁하는 예비 직장인들의 스펙이 꾸준히 상향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일부 취준생들이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다. 20대 모든 것을 쏟아서 입사해서 찾는 것은 '보상'이다. 입시를 위해 3년에서 6년을 쏟아붓고 대학에 어렵게 들어가 1, 2년 자유를 만끽하던 과거 우리를 본다. 그들에게는 고등학교 3년보다 취업 준비를 위한 수년간이 더 어려웠음을 감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3! 3!'


첫 직장은 삼삼삼 법칙이 있다고 한다. 처음 입사해서 3일, 일과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단계인 3개월, 그리고 어느 정도 숙련된 3년. 이 3, 3, 3이 처음 입사한 직장인이 가장 퇴사의 고민을 갈등하는 시기라고 한다.


입사에 덜컥 성공은 했지만 정작 학교 다닐 때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3일을 버티지 못하게 한다. 첫날은 직장인이 된 기쁜 마음에, 2일 차에는 멋모르고, 3일 차는 그래도 한 번 더라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정작 3일이 지나기 전 퇴사할 사람은 떠난다. 3개월은 어느 정도 업무 파악도 되고, 부서 내 환경에도 적응했을 시기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업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직장인들이 있다. 퇴직 사유야 업무가 맞지 않다고 하지만 정작 부적응이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고 나면 진정한 직장인으로 조금씩 거듭난다.


하루하루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꾸준히 3년을 채워가다 보면 그들에게도 위기는 온다. 직장에 대한 보람, 책임, 희망대신 애환, 애증, 분노, 실망 등과 같은 네거티브한 감정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일에 대한 적성보다는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선배, 친구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A회사는 연봉이 여기보다 많고, B회사는 직원들에게 주는 복지가 좋다는 등. 결국 이직의 이유를 찾게 되고, 그렇게 회사를 떠난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최근 많은 20, 30대 직장인들이 첫째로 중요시하는 것은 많은 연봉도, 훌륭한 복지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다. 결국 과하게 많은 업무는 거부하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회사를 다니기를 희망한다.


주변에도 이직의 가장 높은 가치를 워라밸이라고 얘기하는 동료들이 있다. 나 또한 과다한 업무 때문에 생활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싫어한다. 다만 균형의 의미를 한 가지 잣대에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간혹 라이프(Life)에만 관대한 균형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즉, '라이프(Life)'때문에 '워크(Work)'에 피해를 주는 일도 더러 생긴다. 자신의 '라이프(Life)'가 간섭받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업무에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 균형이란 정확히 오십 대 오십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달에 워크가 '51'이었으면 다음 달에는 라이프가 '51'이 될 수 있는 유연한 균형이 맞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TV ‘신입사원’

이전 03화 십억을 날려버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